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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앙] 본캐와 부캐 사이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 2024-10-16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 중에 ‘본캐’와 ‘부캐’라는 용어가 있다. 본캐는 본래의 캐릭터, 부캐는 부가적인 캐릭터를 뜻한다. 유명 가수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연기를 하면 본캐는 가수이고 부캐는 연기자인 셈이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그레고리 멘델, 조르주 르메트르. 이 세 사람의 본캐는 가톨릭 사제이고, 부캐는 과학자로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의 소유자들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 출신의 사제·의사·천문학자·신학자였으며 대교구장까지 지냈다. 그는 무려 1500년 동안 서양 천문학의 절대적 교의와도 같았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오류투성이임을 알아내고, 1543년에 그의 저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통해 인간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지동설을 제안한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세계관의 출현이었으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러한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불렀다.

19세기에 이르러 찰스 다윈은 그의 저서 「종의 기원」에서 자연 선택설에 기반한 진화론을 주장해 창조론에 익숙한 서양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논란의 대상이었던 진화론은 멘델이 이를 뒷받침할 핵심 이론인 유전의 개념을 완두콩을 이용한 실험과 관찰을 통해 정립한 이후에야 이론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멘델은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생물학을 공부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수도원 소속 사제였으며 수도원장까지 지냈다.

1960년에 성 요한 23세 교황에게 몬시뇰 칭호를 받은 르메트르는 벨기에 출신 사제이자 이론물리학자·수학자·천문학자였으며 교황청 과학원장을 지냈다. 아인슈타인과 우주론에 대해 논쟁할 정도로 뛰어난 학자였던 그는 우주팽창 이론을 처음 제시했으며, 이는 곧 에드윈 허블의 외부은하 관측으로 입증되었다. 또한 팽창하는 우주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우주의 시작은 한 점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혁신적인 우주론을 제시하였다.

과학과 종교는 교집합이 없고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처럼 보이지만,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면 안 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담론이다. 그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가다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 상대방과 대결해야 하는 관계는 더욱더 아니다. 높은 하늘과 깊은 바다가 드넓은 수평선에서 서로 만나듯이, 과학과 종교는 진리의 수평선에서 서로 만난다.

과학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창(window)이다. 그 창을 통해 들여다본 자연과 사물의 이치는 놀랄 만큼 순수하며, 복잡함 속에 단순한 질서를 감추고 있다. 과학자들은 보물찾기하듯 자연과 사물 속에 숨겨진 진리를 찾는다.

코페르니쿠스·멘델·르메트르 역시 과학이란 창을 통해 신의 섭리를 찾고자 했다. 그들은 모두 본캐와 부캐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떠올려보며, 평범한 평신도로서 나의 본캐와 부캐를 생각해 본다. 나의 본캐는 과학교사이고, 부캐는 가톨릭 신자다. 본캐와 부캐 사이에서 나는 삶이라는 흰색 캔버스에 얼마나 진실된 색으로 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가? 나의 가을은 이에 답해야 할 성찰의 시간이다.

“과학은 아름답습니다. 과학은 하느님의 창조적인 생각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조르주 르메트르)



경기 효명고등학교 과학교사 전성호 베르나르도
[가톨릭평화신문 2024-10-16 오후 2:12:08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