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대표하는 가톨릭 국가라 할 수 있는 프랑스는 순례뿐 아니라 방문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몇해 전 화재로 많은 이를 안타깝게 했던 노틀담대성당은 순례객과 관광객들로 상시 긴 줄이 섭니다. 저희 순례단은 다행히 현지 한국인 수도회 신부님의 배려로 도착과 함께 대성당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성심대성당 가는 길은 그 유명한 ‘몽마르뜨’입니다. 흔히 몽마르뜨 언덕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어로 ‘몽’이 언덕이란 뜻이므로 몽마르뜨 언덕은 우리말로 하면 ‘마르뜨 언덕 언덕’이 됩니다. 여기서는 거룩한 순례단원들도 조금은 이성을 잃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좁은 길에 자칫하면 일행을 놓치기 쉬운데 몽마르뜨에 늘어선 작은 가게들, 예쁜 소품들, 스케치하는 낯선 화가들과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눈과 마음을 그냥 뺏어버립니다. 순례단의 다수를 차지하는 자매님들이 그냥 지나칠리 없지요. 인솔자의 말이 먹힐 수가 없습니다.
기적의 메달 성모대성당 역시 순례자들로 가득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기적의 메달은 꽤 유명하지요. 이 성당은 1830년 수련수녀였던 카타리나 라부레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신 것을 기념하는 곳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 방문은 한국교회와의 인연 때문에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첫 선교사가 파견될 당시 모습을 그린 대형 액자를 보면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백배 천배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개선문과 밤에 센강 선상(船上)에서의 에펠탑 구경은 파리 여정의 또다른 즐거움입니다.
드디어 루르드행. 루르드는 매년 400만 명이 찾는 성모순례지입니다. 그러나 루르드의 첫인상은 썩 편치 않았습니다. 유명 관광지에 온 듯 산만하고 밀집된 가게들 때문입니다. 아쉬움도 잠시, 순례가 시작되고 벨라뎃다 생가와 발현 장소인 마사비엘 동굴 순례, 그리고 기적수에 침수까지. 루르드 순례의 백미는 단연 마사비엘 동굴에서 순례단이 봉헌한 미사입니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장소 바로 그곳 제단에서 말이지요. 열심이 너무 과해서일까요. 이날 전례 준비 중에 서로 독서를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해프닝도 있었지요.
쓰고 보니 못다쓴 순례기가 된 것 같습니다. 머지 않아 다시 순례자가 되어 길 떠나는 저를 그려봅니다. 10월 묵주기도성월, 참 좋은 계절입니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취재부장,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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