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언(寓言, 풍자적이거나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짧은 길이의 이야기)에 ‘농부망서’(農夫亡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농부가 호미를 잃어버리다’는 말인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농부가 밭에서 일을 마친 후 빈손으로 돌아오자 남편을 본 아내가 호미는 어디에 두었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아주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잃어버린 게 아니고 밭에 두고 왔소(田裏).” 화가 난 아내가 팔을 잡아당기며 작은 소리로 말합니다. “작은 소리로 말해요. 누가 듣고 가져가면 어떻게 해요?” 아내는 남편에게 어서 돌아가 호미를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 밭으로 간 농부는 호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달려와 농부가 아주 작은 소리로 아내의 귀에 대고 말합니다. “없어졌소.”(不見了) - 「雅俗同觀」
농부가 밭일을 하다 호미를 잃어버리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처신이 문제입니다. 위 이야기는 작은 소리로 말해야 할 때 큰 소리로 말하고, 큰 소리로 말해야 할 때 작은 소리로 말하는, 사리분별을 못하는 농부의 한심한 이야기입니다.
관찰자 입장으로 이야기 밖에서 이야기를 바라보면 멍청한 농부가 보입니다. 나는 그 정도 멍청함을 눈치채는 현명한 사람 같아 피식 웃고 맙니다. 그런데 내가 농부가 되어 들어가면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오늘은 내가 왜 이렇게 한심해 보일까요? 우리 사회에서 없어진 호미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수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무엇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희망도 잃어버렸습니다. 일어날 힘도 잃어버렸습니다. 우울증 환자가 늘어나고, 자살자가 늘어나고, 직장을 잃어가고, 자존감도 잃어가고, 배려도 잃어버렸습니다. 빈부차는 더욱 심해져 주머니도 비어가고, 집도 잃어갑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 호미를 두고 우리의 목소리는 어떤가요? 귓속말로 작은 소리를 내야 할 때 큰소리로 내리지르고, 큰소리로 외쳐야 할 때 귀에 대고 작은 소리를 내는 사이 호미가 없어졌습니다. 언론도, 종교도, 지식인도, 예술인도, 시인도, 노동자도, 학생도 지금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우선 나부터도 귀에 대고 죽어가는 목소리로 “없어졌소”(不見了) 하고 있어 한심한 농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조용해야 할 사람은 큰소리로 “밭에 두고 왔소”라고 동네방네 잘났다며 고성을 내고, 크게 세상에 외쳐야 할 이는 입술을 물고 소심하게 벽 뒤에서 “없어졌소”라고 역할 분담하는 사이 누군가 훔쳐 가 우리 사회는 호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우선 나 자신이 현명한 관찰자가 되려 할뿐, 멍청한 당사자라는 것에 부끄럽습니다.
중국 당나라 2대 황제였던 태종의 이름은 이세민이었습니다. 이름의 뜻은 제세안민(濟世安民), 즉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평안케 하라’는 의미로 지어졌습니다. 이름에 걸맞은 업적을 남기기 위해 그는 3개의 거울을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첫째는 외모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청동거울’이요, 둘째는 역사의 흥망사를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역사의 거울’이며, 셋째는 옆에서 직언해줄 ‘충신 거울’이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거울’과 ‘충신 거울’이 없어진 채 ‘청동거울’만 남아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큰소리치는 그 자신의 외모를 위한 청동거울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아진 ‘역사의 거울’과 ‘충신 거울’이 다시 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없 어 졌 소!!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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