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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 손 잡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픈 묵주 고쳐드립니다” 2024-10-08

인천교구 부평1동본당(주임 이재학 안티모 신부)에는 특별한 병원이 들어서 있다. 다름 아닌 묵주병원. 병원에 입원했던 낡은 묵주들은 ‘묵주 닥터스’의 손을 거쳐 건강한 이음새와 원래의 빛깔을 되찾고 퇴원을 기다린다. 건강을 되찾은 묵주는 신자들의 기도에 활력을 더한다. 그야말로 하느님이 보시기에 예쁜 기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낡은 묵주를 수선하는 묵주병원을 운영하고 묵주 닥터스를 양성하는 가톨릭공방 ‘예쁜기도’를 찾았다.


 

성모님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10월 4일, 예쁜기도 공방에서는 묵주 닥터스 양성 과정이 한창이었다. 이날 모인 회원은 4명. ‘인턴’을 끝내고 ‘레지던트’ 과정 막바지에 다다른 안예나(소화데레사) 씨의 수려한 매듭 솜씨는 이제 막 입문한 인턴들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묵주에 집중하며 고개를 파묻고 매듭을 짓고 구슬을 꿰는 모습은 의사들이 수술을 집도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이를 낳고 세례를 받은 예쁜기도 권묘정(베로니카) 원장은 예비신자 수업을 하면서 처음 묵주를 보게 됐다. 모양도 예쁘고 언제 어디서든 손에 쥐고 기도를 할 수 있는 묵주에 매료된 권 씨는 5만 원을 들고 동대문을 찾았다. 무작정 재료를 사서 가게 사장에게 묵주 만드는 방법을 배워 온 권 원장은 집에서 혼자 수없이 연습하며 묵주를 만들어 지인들과 나눴다. 레지오 활동을 하면서 본인이 만든 묵주로 매일 기도를 드리며 그가 깨달은 것은 묵주의 아름다움만이 아니었다. 늘 손에 쥐고 있는 묵주가 성모님 손길과 같이 느껴졌다.


 

 

권 원장은 “매일 묵주 기도를 하면서 어느 순간, 묵주를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성모님 손을 잡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린아이가 엄마 손을 꼭 잡았을 때 안정이 되듯이, 묵주를 쥐고 있으면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따뜻한 성모님 손길과 같은 묵주가 낡고 오래됐다고 방치되거나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권 원장은 각자의 추억이 담긴 묵주를 계속해서 쓸 수 있도록 수선을 해 주는 공방을 운영해 보고자 했다. 그렇게 떠오른 아이디어가 묵주병원이다.

 

 

“공방이 한곳에 있다 보니 전국 신자들의 묵주 수선을 소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각 본당에 묵주병원을 입점시키고 이를 운영할 수 있는 ‘묵주 닥터’를 양성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했고, 현재 공방에서 묵주를 수선하고 만들 수 있는 ‘묵주 닥터’ 20여 명을 양성했습니다.”

 

 

묵주병원은 본당 한켠에 부스 하나만 놓으면 완성이다. 낡은 묵주를 입원 칸에 넣어두면 담당 닥터가 이를 수선해 퇴원 칸에 넣어두면 찾아가면 된다.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거나, 새로운 디자인으로 리폼 제작도 가능하다. 현재는 부평1동본당에만 묵주병원이 운영되는 상황이지만 권 원장은 모든 본당에 병원을 입점하는 것이 목표다.

 

 

“SNS를 보시고 해외에서도 묵주를 보내주시는 분들이 여럿 계셨어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남겨주신 묵주가 너무 소중해서 차마 버릴 수 없다며 헐 대로 헌 묵주를 보내시기도 하고, 3대에 걸쳐 내려온 100년 넘은 묵주 수선을 요청하신 분도 계셨어요. 묵주에 담긴 여러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묵주가 단순히 기도를 하는 도구가 아닌 추억과 신앙의 역사가 담긴 소중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더 정성스럽게 수선하는 작업에 임하게 됐습니다.”


 

 

묵주 기부를 통해 확장되는 기도

 

 

묵주 만드는 것이 좋아서, 지인들에게 직접 만든 묵주를 나누고 싶어서…. 회원들이 묵주 닥터스 양성 과정에 참여한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그들이 공통으로 묵주를 만들며 느낀 것은 이 여정이 ‘성모님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도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 기도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권 원장은 직접 만든 묵주를 기부하는 작업도 올해 1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묵주를 만들 수 있는 닥터들이 있으니 공방에서 재료를 제공하면 각자 집에서 만들어 온 묵주를 해외 선교지에 보내는 방식이다.

 

 

“묵주 닥터스 참가자가 많아지면서 재능기부를 제대로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신자들은 묵주가 없는 분들이 없지만 묵주 하나를 구하기도 어려운 나라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우리가 만든 묵주를 해외 선교지에 기부하면 좋겠다 싶었죠.”

 

 

예쁜기도 공방에서 올해 상반기 동티모르와 대만 등에 만들어 보낸 묵주는 400여 개. 600개를 채워 올해 1000개를 보내는 게 권 원장의 목표다.

 

 

묵주 닥터스 회원 김혜영(제오르지아) 씨는 “우리는 어디서나 쉽게 묵주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묵주를 살 수 없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기부할 묵주를 만들면서 나의 신앙과 기도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예나(소화데레사) 씨는 “제게 묵주는 신앙을 놓지 않게 만드는 끈과 같다”며 “제가 만든 기부 묵주를 받은 먼 나라의 신자들이 저처럼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시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10-08 오후 1:12:0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