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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율리아나의 투병 단상 (5)사랑하는 마음을 숨기기 위한 소란스러운 정적 | 2024-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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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대목을 앞두고 진료가 한 시간이나 지연되었는데도 교수님께서는 매우 차분히 나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암이 여기저기 너무 많이 퍼진 데다가 폐도 다시 매우 안 좋아졌고, 최근 골반에 방사선치료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걷기가 힘든 상황이니 원한다면 언제라도 입원장을 내주실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과 조금이라도 오래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기에 가능하다면 내가 일상에서 더 버티길 바라셨고, 나 또한 그 말씀에 백 번 동의하기에 힘을 내어 집으로 돌아왔다. 곧 숨이 더 차질 것을 대비해 산소통에 대한 설명을 들었고, 지난번 방사선치료 부작용으로 뚫려버린 입천장 구멍이 더 커져서 식사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위에 관을 삽입해서 뱃줄 식사를 하게 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첫 번째로 든 생각은, 내 질긴 생명력으로 인해 엄마 아빠를 너무 지치고 힘들게 하는 상황까지 가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이제는 내게 벌어지는 어떤 이벤트든 모두 내 인생의 마지막 이벤트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여행, 마지막 식사, 마지막 만남, 마지막 노래?. 그래서였을까? 긴 명절 연휴 동안 막내 이모 댁과 함께 다녀온 양양 가족여행은 유독 애틋했다. 솔직히 말하면 짐을 챙기는 것부터 모든 것이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거동이 불편해진 나는 휠체어가 필요했고, 큰 휠체어를 가장 먼저 챙기고 나니 트렁크가 벌써 가득 차서 다른 짐들은 테트리스 하듯 꾸역꾸역 넣어야 했다. 예약했던 숙소는 사진으로 본 것과 실물이 너무나 달라서 업체와 싸워가며 겨우 환불을 받았고, 급하게 새로운 방을 구하느라고 여행 첫날을 다 써버렸다. 그래도 둘째 날은 즐거울 거라 기대했다. 따뜻한 모래에 누워서 모래찜질을 할 생각에 설렘이 가득했다. 하지만 양양에 하루종일 비가 내려 바다 구경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계획을 틀어 온천으로 향했다. 원래도 온천을 좋아했기에 나쁘지 않은 차선책이었다.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탕으로 들어가 있는데 막내 이모가 곧 따라 들어오셔서 내 옆에 앉으셨다. 정적이 흘렀다. 머릿속에 온갖 말이 떠돌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소란스러웠다.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땀인 척 닦아내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모… 말은 해야겠는데? 자꾸 눈물만 나네?. 근데 지금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요?. 우리 가족들한테, 나한테 잘해줘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말할 수 있을 때 해야지. 이젠 이놈의 병이 기적같이 낫는 일이 정말 없을 거 같거든요.” 엄마는 다 큰 딸내미 몸을 구석구석 최선을 다해 밀며 묵은 때를 벗겨내 주었다. 엄마?. 엄마에겐 차마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우린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왔고, 더이상 무엇도 할 수 없음을. 그저 애통하고 서러운 마음을. 그리고… 서로를 너무나 사랑함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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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10-02 오후 1:12:11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