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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27주일 2024-10-02

최근 ‘혼인’에 대한 인식은 크게 변화됐습니다. 혼인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비혼주의자도 많이 늘어났고, 혼인보다는 동거를 원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혼인은 원하지만 아이 없이 부부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혼인 후에 이혼을 선택하는 비율도 높아졌습니다. 최근 어느 통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이혼율이 제일 높은 국가였습니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 속에서 세상은 급변하지만, 거센 풍랑을 만난 교회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혼인에 대한 전통적 입장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혼인의 본질적 특성 중 하나는 ‘단일성’이고, 다른 하나는 ‘불가해소성’입니다.(교회법 제1056조) ‘단일성’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혼인을 통해 전인격적 일치를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가해소성은 하느님께서 부부로 맺어주신 남자와 여자를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혼인 서약을 한 부부는 죽음 외에 결코 갈라질 수 없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혼인예식을 거행하면서 공동체가 보는 앞에서 본인의 결심을 말하고, 주례사제는 신랑과 신부의 합의를 수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주님께서는 두 분이 교회 앞에서 밝힌 이 합의를 당신 은혜로 확고하게 하시고 두 분에게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으신 것을 사람이 풀지 못합니다.”


혼인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기본 가르침을 오늘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혼을 허락해 주어도 되는지 여부를 묻는 바리사이들을 반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 10,8-9)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테오스’)과 ‘사람’(‘안트로포스’)을 서로 맞대어 비교하시는데(마르 7,7-23; 8,33 참조), 이 대조를 통해 이혼이 불가능한 이유를 강조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무효화하려는 시도는 인간적 행위에 속합니다.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묶어준’ 것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신적 행위이기 때문에, 이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후대에 제정된) 이혼장과 관련한 율법 조항(신명 24장, 특별히 1절과 3절)을 반대하시면서 여기에 담긴 하느님의 의도와 목적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이혼장과 관련하여 모세가 알려준 법적 조문은 혼인에 대한 하느님의 목적을 진술하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이 목적이 거부될 때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고 있을 뿐입니다. 모세가 관련 법조문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준 것은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이들의 ‘완고함’, 곧 하느님의 창조적 질서를 벗어나 이혼을 하는 상황에서 유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 앞에서 창세기 1장 27절과 2장 27절을 인용하십니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마르 10,6-7)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창조를 통해 보여주신 ‘첫 번째 원리’가 사람들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후대의 법적 조항보다 우선함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혼인 윤리는 인간의 실패를 용인하는 것에 근거하지 않고, 하느님의 창조에서 시작된 원형에 근거합니다.


오늘 주일 제1독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창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의 창조, 특별히 여자를 창조하시면서 남자와 여자를 결합하여 한 몸으로 만들어 주시는 하느님의 창조 원리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은 상호 종속 관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협력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에제르”는 ‘돕는 이’ 또는 ‘지원하는 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 “알맞은 협력자”(창세 2,18)가 함께 있는 것이 좋다고 보시어, 사람의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셨습니다. 하느님의 창조 원리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되어 낮은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를 도우며 지원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에서는 어느 누구 하나가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여자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서로를 마주 바라볼 수 있는 “그[사람]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하느님께서 지으신 여자를 보고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라고 외치는데, 이 말을 통해 남자와 여자가 누구인지(정체성),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평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일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혼인의 고귀함을 일깨워줍니다. 남자와 여자의 창조, 남자와 여자의 결합에 대한 보도가 성경의 시작, 곧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서 소개되고 있다는 점은 사람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그리고 남자와 여자의 결합, 곧 혼인이 결코 인간적 선택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수 없는, 오직 하느님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는 거룩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을 보시고 협력자를 보내주시는 하느님은 사람과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기초 삼아 당신의 구원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혼인의 가치가 세속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힘을 잃어가는 작금의 시대에 혼인의 거룩함과 고귀함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서 되새김질하면서 이 세상에서 창조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원리와 방법을 전파할 수 있는 증인이 되어 봅시다.



글 _ 정진만 안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가톨릭신문 2024-10-02 오전 9:32:12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