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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이효일 작가 2024-10-02

키우지 못한 탈렌트


저는 서울 익선동에서 태어났어요. 전주 이씨, 조선 왕가의 후손이 후손이에요. 고모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할아버지께서는 추수철이 되면 전국에서 소작농들이 매일 같이 소달구지에 실어 온 수확물을 확인하셨다고 해요. 큰 부자셨던 거죠. 왕가의 피가 흘러서 그런지 지금도 밥을 먹을 때는 다 먹지 않고 조금씩 남겨요.(웃음) 그만큼 왕손으로서 긍지가 있었어요.


가톨릭 신앙은 부모님께 물려받았어요. 아버지께서도 신자셨고, 어머니께서는 충청도 옹기장수 집안 출신이에요. 어머니 집안에 순교자가 있을 정도로 신심이 깊으셨어요. 두 분의 신앙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은 거죠. 가톨릭적 분위기에서 성장했고, 제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어릴 적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주님께서 제게 미술 쪽으로 큰 탈렌트를 주셨지만, 집안 분위기상 그림을 공부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도 이것저것 만들면서 재주를 키워갔죠. 지금은 없어졌고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당시 명동대성당 앞에 미켈란젤로 미술원이 있었어요. 신부님들을 위한 성미술 소품을 만들던 곳이었어요. 말하자면 교회 성미술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당시 명동성당 주임이셨던 고(故) 김몽은(요한) 신부님의 도움으로 그곳에서 조그만 성물을 직접 만들었어요.



주변의 도움으로 성미술 작업에 나서


청년 시절에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한 교회의 보육시설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명동성당에서 보내는 아이들을 맡아서 보호하고 교육했죠. 호적 없는 아이들은 호적을 만들어주고, 학교에도 보내고요. 그러면서 작품활동도 계속했어요.


그런데, 작품이 팔려야 생활을 할 텐데 그러질 못했어요. 여기저기 작품을 알리는 일은 제 성향에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좀 어렵게 살았죠. 한때는 일본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불상을 만들어 팔기도 했어요. 서울 소공동에 있던 반도호텔에서요. 당시는 일본 관광객들이 많아서 꽤 많이 팔았어요.


교회미술에서는 김몽은 신부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신부님께서 제 작품을 알아봐 주시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주셨죠. 교회에 봉헌한 첫 작품은 절두산 순교성지에 있던 성 요셉 조각상이었어요. 1980년대 초반에 작업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1미터 남짓한 작은 조각이었어요. 2000년대 중반까지는 성지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후로 70~80개의 작품을 교회에 봉헌했어요. 광주대교구 여수 선원동성당 성가정상을 만든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여수에서 며칠을 머물며 힘들게 작업했던 게 기억나요. 서울 신당동성당에 십자가의 길 14처와 성수대, 수호천사상, 성모상을 봉헌했어요. 그중 성모상은 현재 광희문 순교자 현양관에 있어요.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묘원 성직자 묘원에 십자고상을 봉헌했는데, 오래되고 낡아서 지금은 없어졌어요. 또 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성당에 십자가의 길 14처와 103위 성인 부조상을 봉헌했는데, 아쉽게도 103위 성인 부조상은 소실됐어요. 관리가 잘 안 되니까요.


1993년 인천교구 부천 상동성당에 제대와 강론대, 감실을 봉헌했어요. 당시 성당을 짓는데, 무슨 용기에서였는지 주임이던 김영건(베난시오) 신부님을 직접 찾아가 ‘저는 성미술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당 성물 작업을 하나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당시 성당 성물은 조광호(시몬) 신부님이 제작하고 계신 상황이었죠. 그런데도 김 신부님께서는 뭔가 마음에 동하셨는지, 제게 공사장 옆에 작업장까지 마련해 주시고, 매일 작업하시는 것을 지켜보셨어요. 그리고 제게 제대와 강론대, 감실을 맡기셨어요.


그리고 1997년 의정부교구 대화동성당 제대 십자고상과 제대 벽면 조각을 마지막으로 성미술 작업은 못하게 됐어요. 제가 건강이 갑자기 나빠졌기 때문이에요.



작품으로 기억되는 작가 되고파


이름을 널리 알린 작가는 아니지만 나름으론 열심히 성미술 작업에 나섰어요. 여러 성당에 작품을 남겼지만 보수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매우 아쉬워요. 소리 소문 없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고요. 한국교회에서 성미술 작품은 돈 주고 사다 놓는 소모품 정도로밖에 인식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건강이 좋지 못해 직접 나서서 보수를 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요.


특히 본당 사제의 선호도에 따라 성미술 작품들의 변경이 잦은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새로 온 신부님이 작품이 맘에 들지 않으면 새로운 작품으로 들여놓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 기존의 작품에 대한 기록이라도 남겨두면 좋겠어요. 저와 같은 이름 없는 작가들은 이런 기록들이 큰 의미로 다가오거든요.


올해 77살인데요. 올해 초에 희수(喜壽)를 맞아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해 선보이는 전시회를 열었어요. ‘이 두 손에 주님을 담을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 하나이다’를 제목으로요. 주님께서 제게 주신 탈렌트를 발휘해 그동안 만든 작품들을 사진으로나마 보여주기 위해서였죠. 얼마 남지 않았을 제 삶을 정리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많은 작품들이 소실되고 있지만, 청동이나 돌로 만든 조각들을 저보다 더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잖아요? 제 작품을 보면서 저와 같은 작가가 열심히 성미술 작품에 참여했다고 기억해 주면 좋겠어요.



◆ 이효일(마태오) 작가는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성미술 작업에 나서 서울대교구의 신당동성당과 이문동성당, 수원교구 조원종주교좌성당, 송서성당, 광주성당, 팽성성당, 대구대교구 봉덕성당, 광주대교구 여수 선원동성당 등에 성모상과 십자가의 길, 십자고상, 김대건 성인상 등을 남겼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10-02 오전 9:32:12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