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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고통 어루만진 사랑의 의료 봉사, 미래의 희망 꽃 피웠다 | 2024-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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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말라본 박주헌 기자] 한 줌 밀 반죽도 좁쌀만 한 누룩(실천)만 있으면 몇 배는 커다란 빵(희망)으로 부푼다. 사랑도 그런 누룩을 빼닮아서, 실천하는 순간 자기보다 큰 기적을 가져오는 신비를 품었다. 나보타스시에 사는 에어컨 기술자 레이날도 베이어(27) 씨는 스무 살 무렵 수리 작업 중 불의의 사고로 앞니가 부러졌다. 비싼 돈을 들여 동네 치과에서 치아를 씌웠지만 금방 또 부러졌고 그 상태로 지금껏 버텼다. 줄곧 그에게는 “걸리적대기나 하는 앞니를 뽑아 버리는 게 낫겠다”는 낙담뿐이었다. 놀림감이 되기 싫어 웃음을 잃었던 베이어 씨가 마침내 함박웃음을 보인 건 9월 15일 샌 로렌조 루이즈 성당을 찾아 루카회(회장 최현철 미카엘·지도 김준교 토마스 신부) 치과 의료봉사자에게 앞니 레진 치료를 받고서였다. 그는 “오늘 봉사자들에게 받은 건 그냥 새 앞니가 아니라 희망”이라며 “이 지역 최고의 기술자답게 다시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겠다”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렇듯 추석 연휴마저 기꺼이 내바친 루카회와 요셉의원 3박4일 의료봉사 여정은 의료 소외의 고통 속에 있던 필리핀 수도권 빈민 530명이 절실히 기다리던 진료와 약 처방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전국 인구 1억1290만여 명, 여전히 상당한 빈곤율(지난해 15.5%)에 대면 미약해 보여도 봉사자들 만면에는 긍정의 미소만 넘실댔다. 의료봉사는 주민들의 시급한 고통의 불길을 끄는 것보다 그들 앞날에 희망을 심어놨다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환자를 진료해 주시는 여러분들 덕분에 요셉의원은 해당 환자들을 ‘팔로업’(follow-up, 추적검사 및 관찰)할 수 있게 됩니다.” 요셉의원 원장 김다솔(야고보) 신부는 “봉사자들의 진료 소견 덕에 환자들에게 추가 의료 지원이 가능해진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결핵환자 경우 의료봉사자들이 와서 엑스레이, 초음파검사 등을 해주면 심장병, 갑상샘 질환 등 그간 발견 못 했던 병들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면 현지에서 요셉의원이 추가 검사를 의뢰하고, 검사 결과에 따라 환자의 처방 약을 바꾸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주는 것도 가능해진다. 필리핀에서 검사 및 수술을 받는 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 현지 의사들도 적극 권장하지 않아 환자들은 발견 못 한 병이 많다. 요셉의원을 찾는 한국 의료봉사자들이 있기에 마침내 제대로 된 치료의 물꼬가 트이는 셈이다. “검사 결과가 어떨지라도 낙담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한국 선생님들이 도와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류마티스성 심질환을 앓는 빅토리아 레가스피(82) 씨도 15일 샌 로렌조 루이즈 성당에서 루카회 의사들에게 진료받고 약을 타갔다. 레가스피 씨네 11명 대가족 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큰아들과 자신뿐이다. 일하다가 갑자기 호흡 곤란이 오는 고통 속에도 가사까지 도맡았던 그는 “주시는 약으로도 많이 괜찮아졌는데, 후속 검사를 받고 더 나아지면 옷 가게를 열어 어린 손주들을 돌볼 것”이라며 부푼 희망을 표현했다. 요셉의원을 찾는 어느 봉사단이든 의료봉사에 대해 “사소한 도움뿐이라 미안하다”고 말하지만, 그 작은 헌신으로 필리핀 가난한 이웃들은 비로소 미래를 꿈꾼다. 스스로 돕지 못하는 이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것만큼 사람을 가슴 뛰게 하는 일이 있을까. 그 두근거림은 루카회 의료인 어른들을 따라 봉사에 동행한 미래 세대들 가슴에도 나누는 삶의 기쁨을 심어놓았다. “필리핀 사람들에게서 ‘날 도와줘서 고마워’라며 안아주는 예수님을 봤어요. 어른들이 왜 ‘사랑하며 살거라’ 하시는지 알게 된 최고의 추석이었어요!” 내과의사 최현철(미카엘) 회장을 따라온 아들 최범준(마르첼리노·초등학교 3학년) 군은 봉사 여정 내내 의약품 진열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잔심부름을 자진해 도맡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걸 해줬을 뿐인데 ‘고맙고 사랑해’라며 안아주던 필리핀 사람들 품이 뭉클해 나도 모르게 열심해졌다”고 최 군은 쑥스러워했다. 여느 또래처럼 축구선수를 꿈꾸던 최 군은 이제 “아빠처럼 의사가 되는 것도 좋겠다”고 말한다. “어떤 삶을 살더라도 누군가와 나누고 희망을 줄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마음 밭은 며칠의 사랑 나눔 체험만으로도 부쩍 자라나 있었다. ◆ [인터뷰] 필리핀 요셉의원 병원장 김다솔 신부 “오늘내일 먹을 게 없어 굶어야 하는, 붕괴할지도 모르는 집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그들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이것이 하느님의 이끄심이라고 믿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그 가르침대로 2022년 필리핀 요셉의원 사목에 자원해 3년째 병원장으로 소임 중인 서울대교구 김다솔(야고보) 신부는 “절박한 사람들의 애타는 요청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라고 고백한다. 평소 해외선교에 꿈이 있었지만, 1개 본당 보좌 경험이 다였던 젊은 사제로서 빈곤국의 열악한 환경을 무릅쓰고 병원장의 책임을 다한다는 건 버거운 일이 아니었을까. 그저 김 신부는 “그 모든 갈등과 힘듦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책임감이었다”고 말했다.
“어렵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현상 유지조차 되지 않죠. 매일 찾아오는 환자들을 기다리게 만들지 않겠다는 열망 때문에 저도 모르게 용기가 솟고 대담해졌습니다.” 기아와 질병 속 몸부림치는 빈민들…. 김 신부는 “앞으로 나아갈 의지마저 빼앗긴 그들이 비로소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희망을 되찾길 기대하며 응급처치, 긴급구호 두 가지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당장 먹을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식료품을 제공하고, 환자들에게는 진료받고 약을 복용할 수 있게 돕거나 필요시 추가 검사와 입원 수술도 지원한다. 김 신부는 “일시적 도움인 구호를 넘어 장기적 희망도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학생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공부하고자 하는 아이들을 선발해 가르치고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는 “현재만이 아니라 10년 후 미래를 꿈꾸게 하고,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노력”이라고 역설했다. 이러한 김 신부의 의지대로 필리핀 요셉의원은 그 밖에도 ▲요일별 종합 진료 및 의료 검사 ▲의약품 지원 ▲매달 두 차례 외부 공소 및 교도소 방문 진료 ▲빈곤 아동 급식 제공 프로그램 ▲매달 70여 가정 식료품 지원 ▲집짓기 사업 등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이 모든 발걸음은 후원해 주시는 분들 덕에 가능했다”는 김 신부. 그는 끝으로 “사람들을 치료하고 먹이고 거처를 마련해 주는 일은 그 안에 계신 하느님을 살리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많은 기도와 응원을 부탁했다. ※ 후원 070-4688-3412 필리핀요셉의원후원회 (월~금 오후 1시~5시 통화 가능)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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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10-02 오전 9:32:12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