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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의 후계자, 믿음과 사랑 안에서 서로의 일치 체험 2024-09-30

예수님은 최후 만찬 중에 제자들의 일치를 위해 기도하셨다.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 가톨릭교회는 이런 예수님의 염원을 받들어 교회가 믿음과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베드로 직무가 교회의 가시적 일치에 중심적 역할을 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 헌장」 18항에서도 확인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복된 베드로를 다른 사도들 앞에 세우시고 베드로 안에 신앙의 일치와 친교의 영속적이고 가시적인 근원과 토대를 마련하셨다.”


교회의 일치가 베드로의 후계자를 중심으로 유지되고 굳건해지도록 세계의 모든 주교는 5년마다 사도좌를 방문한다. 이를 ‘사도좌 정기방문’(Ad limina Apostolorum)이라고 하는데 라틴어 첫 두 단어를 따 ‘앗 리미나’라고도 한다. 사도좌 정기방문의 정점은 전 세계 주교단의 단장이며 보편교회의 목자인 교황과의 만남이다. 그 만남에 앞서 교황을 돕는 교황청의 여러 부서를 방문한다. 또한 첫 번째 교황인 성 베드로 사도와 선교의 사도인 성 바오로의 무덤을 참배한다. 이번 한국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은 9월 16일부터 한 주간의 일정으로 현직 주교 23명이 참석했는데, 나를 포함한 12명은 처음 경험하는 방문이었다.




교황청 부서 방문...“한국교회에 대한 높은 관심 엿볼 수 있어”


사도좌 정기방문 일정은 과거와는 달리 매우 빡빡했다. 첫날만 해도 4개 부서, 곧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 문화교육부,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 종교간대화부를 방문했다. 이렇게 시작하여 9월 21일 토요일 오전까지 총 15개의 부서와 기구를 방문했다. 모임은 부서장 추기경이나 대주교의 환영 인사로 시작됐고 이어 우리 쪽 대표 주교가 간략하게 한국의 상황을 발표했다. 그리고 자유롭게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우리가 방문한 모든 부서에서 한국교회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지시하기보다는 지역교회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는 의지도 읽을 수 있었다. 보편교회를 위한 한국교회의 기여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를테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전교 지역을 담당하는 복음화부는 가난한 지역의 교회를 위한 재정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또한 2027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에 관심이 매우 크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목자의 사명 되새긴 성 바오로와 베드로 사도 묘소 순례


한국 주교단은 9월 19일 오후 6시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로마에서 거주하는 사제, 수도자들 그리고 교민 등 모두 70여 명과 함께 미사를 봉헌했다. 사제와 수도자로 구성된 성가대의 훌륭한 성가가 동반된 아름다운 미사였다. 이어 다음 날은 교황님 알현을 앞두고 오전 7시 베드로 대성당 지하에 있는 성 베드로 사도 무덤 앞에서 소박하면서도 경건하게 미사를 거행했다.


미사를 지내면서 나에게 맡겨진 목자의 사명을 되새겼다. 주교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마태 16,16)라고 고백했던 사도 베드로의 반석과 같은 믿음을 지녀야 할 뿐만 아니라 신자들도 그런 믿음을 갖도록 온 힘을 다해 도와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물질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이 세상에서 돈보다는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넘어서 주님이 명하신 이웃사랑을 기꺼이 실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또한 성 바오로 사도와 같은 열정으로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사람들이 복음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느끼면서 활기차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사랑방 대화’처럼 격의 없이 정겨웠던 교황님과의 만남


프란치스코 교황님 알현은 9월 20일 오전 8시30분 시작됐다. 전임 교황님들은 교구장 주교들과 개별적으로 만나셨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단체로 만나는 것을 선호하신다. 교황님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으면서 서로 인사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바로 대화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주교들이 질문하면 교황님이 답하시는 방식으로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는데 마치 ‘사랑방 대화’처럼 격의 없이 정겨운 분위기였다.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살린 형제적이고 공동체적인 대화였다.


다양한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주교로서 잘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음에 새겨두고 싶다. “잘 먹고 잘 자고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농담으로 말문을 여신 교황님은 네 가지 친밀함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첫째는 하느님과의 친밀함으로 그것을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주교가 살아가는 데 기초가 되는 기둥이고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둘째는 주교들 사이의 친밀함인데, 주교단 안에서 당파를 만들지 말고 서로 얼굴을 맞대면서 의견을 나누어라. 셋째는 사제들과의 친밀함이다. 사제가 전화하면 늦어도 다음 날까지는 응답하라. 사제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라. 마지막으로 하느님 백성과의 친밀함이다. 특히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교황님의 대화 스타일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분은 매우 진솔했다. 때로는 ‘외교적’으로 모호하게 말씀하실 법한데, 시종일관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분의 유머는 탁월했다. 대화 중에 그분의 유머 때문에 웃음이 여러 번 터져 나왔다. 그분의 배려심은 남달랐다. 대화를 시작하면서 한쪽에 마련된 물병을 가리키시며 목마르면 가져다 마시라고 하셨고 화장실은 저쪽 문으로 나가면 된다고 안내까지 해주셨다. 모임 중간에는 통역하느라 수고하는 몬시뇰에게 손수 물을 따라주시면서 잠시 쉴 틈을 주셨다. 작은 제스처였지만 사람에 대한 깊은 배려심과 애정이 담겨 있어서 매우 훈훈하게 느껴졌다.


교황님과의 대화는 매우 성공적이어서 한국 주교단을 위한 소중한 선물이며 크나큰 기쁨으로 여겨졌다. 통역을 맡았던 몬시뇰도 지금까지 여러 번 통역을 해봤지만, 이번처럼 좋은 대화는 처음이라며 감격한 어조로 얘기했다.



이번 사도좌 정기방문은 하루에 서너 개의 부서를 돌면서 매번 1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듣고 말하는 고된 일정이었다. 하지만 교황청 여러 부서의 업무와 특성을 가까이에서 파악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또한 믿음과 사랑 안에서 한국 주교단의 일치, 성 바오로와 베드로 사도와의 일치, 프란치스코 교황님과의 일치를 체험하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했다.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글 _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의정부교구장)

[가톨릭신문 2024-09-30 오전 9:52:0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