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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조규석 작가 | 2024-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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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스승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진 않았어요. 그러다가 고(故) 이남규(루카) 선생님을 만나게 됐죠. 미학을 공부하셨던 저의 형님이 이남규 선생님의 제자였어요. 제가 만드는 일에 재주가 있어서 형님이 저를 선생님께 소개시켜 주셨죠. 스테인드글라스 장인(匠人)으로요. 처음에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대중화되지 않아서 이남규 선생님도 꽤 힘들어하셨어요. 작품을 만들어 교회에 봉헌하는 일은 더욱 어려웠죠. 옆에서 선생님을 지켜보면서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나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래도 교회미술에서 스테인드글라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이남규 선생님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하신다는 소문이 나면서 꾸준히 작업할 수 있었죠. 유리화 작업에는 회화까지 다 포함돼요. 유리화 장인들은 그냥 기능적인 일만 하고 끝낼 수도 있는데, 이남규 선생님 생각은 달랐어요.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저를 붙들고 그림 공부를 시키셨어요. 작업을 마치면 선생님과 함께 한두 시간씩 그림 공부를 했어요. 선생님과는 10년 넘게 작품활동을 같이 했어요. 선생님은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신장 투석을 하고 계셨고요. 이식 수술을 받고 좀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안 돼 1993년에 돌아가셨어요. 선생님과 매일매일 작업을 하다가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니 좀 황당했죠.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3년 정도 선생님의 공방에서 작업을 이어가면서 당연히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은 끝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떼제공동체의 마르크 수사님을 만났어요. 같은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니 전에도 안면은 있었지요. 수사님께서 당신 작업도 해야 하니 저보고 스테인드글라스 일을 계속하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생업으로 이 일을 하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 수사님께서 유럽의 사정을 설명하시면서 지속성을 갖고 계속 작업을 하면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설득하셨어요. 그래서 수사님과 함께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요. 청평에 공방을 따로 차렸죠. 그런데 수사님은 떼제공동체에서 수도생활을 하시면서 잠깐씩 한국에 들어오시니 많이 답답했어요. 하지만 수사님은 훌륭한 선생님이자 동료가 되었어요. 제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여서 인간적인 면과 종교, 특히 영성적인 면에서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남규 선생님으로부터 스테인드글라스의 기술을 배웠다면 수사님에게서는 영성과 교회미술을 대하는 마음을 배웠어요. 그저 스테인드글라스 작업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삶이 영성으로 튼튼해진 거죠. 그리고 수사님은 처음 밑그림을 디자인할 때 꼭 저와 함께하셨어요. 지나고 보니, 두 스승을 만난 것은 제게 큰 행운이었어요. 정신적인 부유함을 느꼈어요. 참 감사한 일이죠.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직접 작업하면서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가 제 삶이 되었어요. 교회미술을 하다 보니, 제가 원래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닌데,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교회 작품을 할 때에는 더 신경을 쓰게 되죠. 교회에 봉헌하는 것이니까요. 더 많이 기도하게 되고요. 또 신자들이 이 작품을 보면서 더 기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하잖아요. 돈벌이를 벗어나 겸손한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게 되죠. 교회와 전례에 도움이 되는 스테인드글라스 저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라고 생각해요. 성경에서도 보면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후 말씀하신 것이 ‘빛이 생겨라’라는 말씀이었어요. 저도 작업을 위해 빛을 보고 있으면 매 순간 다른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교회의 창을 어디에 두고, 어떤 모양을 할지, 들어오는 빛의 총량을 염두에 둬야 전례에도 도움이 돼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유리의 깊이와 색깔,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고민하죠. 이를 위해선 우선 건축가와 충분히 논의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이게 막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전문가보다는 성당을 짓는 사제의 의견에 많이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요. 소통이 필요한 거죠. 성당부지가 정해질 때부터 건축가와 성당을 짓는 사제, 작가가 함께 의논해 설계에 참여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아요. 물론 처음부터 논의하고 의기투합해서 작업을 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작가와 건축가 사제가 소통하는 과정 자체가 성미술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함께 소통하고 기도로 작품활동을 하는 것이죠. 저는 성미술이란 주님께서 작가를 통해 주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느님의 창조력에 그저 한 도구일 뿐이에요. 그저 스테인드글라스 장인으로서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를 교회에 봉헌하는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뭔지도 모르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한지 45년이 지났네요. 그동안 교회미술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유리재, 작가 네트워크의 장이 되길 청평에서 파주 헤이리로 공방을 옮긴지도 20년이 넘었어요. 유리재라고 공방과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동안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어요. 주교님들과 신부님들도 오시고요. 이제 여기는 그동안 제가 작품활동을 하면서 교회와 사회에서 받은 것들, 제가 배웠던 것을 나누는 자리로 만들려고요. 여기 헤이리에 와서 사는 사람들은 다 이런 뜻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에요. 작품활동도 하고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요. 이제 각각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전문성을 가지고 모여 나누는 공간이 되고 싶어요. 사람들이 언제든 필요하면 쓸 수 있는 모임 공간, 요즘 말로 플랫폼인 거죠. 필요하면 교육도 하고요. 미술을 전공한 아들에게 유리재 대표를 맡겼어요. 아들이 잘 이끌길 바라요. 전 그냥 이렇게 스테인드글라스 장인으로 남아, 스승들에게 배운 것, 하느님의 메시지를 작품으로 전달하기 위해 계속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조규재(요한 사도) 작가는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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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9-27 오후 4:12:16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