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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눈의 들보] 봉사자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 2024-0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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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따라 내 주변을 포함하여 성당에서 활동하는 봉사자를 찾기 힘들다.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어쩔 수 없이 신앙생활을 간접적으로 이어나가야 했지만 지금까지도 성당에 발길을 향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안타깝게도 그중 일부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오면서도 변하지 않은 교회의 모습에 실망했고 성당에 발길을 향했더라도 다시 끊었다고 말한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성당에서 봉사하면 자신의 재능만 소비하고 결국엔 상처만 받게 된다’는 소문도 퍼져있다. 애초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조차 생겨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필자는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세계청년대회(이하 WYD) 소셜미디어 한국어 담당자로 봉사했다. 개최국 현지 조직위원회에서 바로 선발되어 각종 소식과 필요한 정보를 한국어로 번역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에 전달했다. 나는 WYD의 의미와 역사 등 여러 가지 정보를 따로 제작하여 한국에 알려왔다. 특히 작년에는 차기 대회가 서울에서 열릴 것이라는 소식 때문에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당시에 유일하게 한국어로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바로 소셜미디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갖은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사목자들이 세계청년대회에 눈길을 돌리면서 나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신부님들은 내가 하는 봉사가 공정한지, 교회 인가는 받았는지 등 사목자가 아닌 행정가 같은 질문을 쏟아냈고 심지어 나의 신앙관을 따져 묻기도 했다. 8년 가까이 해온 선의의 행동에 대해 고맙다고 표현하는 신부님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생겨난 이유는 사목자가 봉사자를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 신자들은 작은 힘이라도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자 자발적으로 봉사를 시작하지만 결국 사목자에 의해 노동자로 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것은 사목자들이 봉사자들을 자신의 관리하에 시키는 것만 움직여야 하는 일꾼으로 여기는 모습에서 기인한다. 또 봉사자의 삶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 봉사자들은 사제나 수도자처럼 교회의 보호를 받지도 않고 생계를 보장받지도 못한다. 사회에서 아주 치열하게 경쟁하며 하루하루 먹고 사는데 급급하게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봉사자는 하느님을 너무 사랑하고 교회를 아끼며 자신이 느낀 신앙의 기쁨을 몸소 실천하고자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다. 자원봉사자의 영어 단어인 Volunteer는 라틴어 volo에서 어원을 같이 한다. 그런데 프랑스 단어 B?n?vole에서는 그 의미가 명확하게 더 드러난다. ‘자발적인(vole) 좋은 의지(b?n?)’ 곧 ‘호의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목자는 봉사의 참뜻을 이해하고, 봉사자의 좋은 의지와 자발적인 행동을 존중하며, 봉사자를 향해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고마운 표현을 해야 한다. 2027년 서울에서는 WYD가 열린다. 이보다 앞서 한국의 모든 교구에서는 사전 프로그램인 교구 대회도 진행될 것이다. 역대 대회를 돌이켜봤을 때 최소한 5만 명 이상의 자원봉사자가 함께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제6회 대전 아시아청년대회와 제4회 서울 한국청년대회에 있었던 자원봉사자들은 행사가 끝난 이후 한목소리로 “나는 쓰였고 결국 지쳤다”고 말했다. 2027 서울 WYD가 열리기 전에 한국 교회에서 봉사자에 대한 인식과 자세가 바뀌어야 과거와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또 발길을 돌렸던 신자들을 다시 초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글 _ 이주현 그레고리오(의정부교구 지축동요한본당·영상제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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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9-27 오후 2:52:11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