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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노를 거두심 2024-09-27

삽화 _ 김 사무엘

 


“우리가 멸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요나 3,9)

영국의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대제국은 타살로 죽는 것이 아니라 자살로 죽는다”고 말하였습니다.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로 등장했던 대제국의 멸망은 이민족의 침략으로 멸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제국 내부에 망할 수밖에 없는 썩은 징후가 존재했기에 멸망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역사는 반복되어 많은 나라가 이 멸망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 같은 나라는 대부분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병폐가 만연했기에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지도층의 만연된 부정부패와 국민들의 향락과 사치, 독재권력의 잔인한 통치와 착취, 통치자의 치적 쌓기의 무리한 토목공사, 이에 울부짖는 백성들의 피맺힌 눈물이 제국의 멸망 원인이었던 것입니다.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의한 북이스라엘의 멸망 징후를 예견하고 지도층의 타락한 모습을 본 정의의 예언자 아모스는 당시의 추악했던 모습을 이렇게 고발합니다.

“그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양 떼에서 고른 어린 양을 잡아먹고 우리에서 가려낸 송아지를 잡아먹는다. 수금 소리에 따라 되잖은 노래를 불러 대고 다윗이나 된 듯이 악기들을 만들어 낸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아모 6,4- 6)

이 같은 타락의 현실에서 나라가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비단 대제국과 한 나라만의 멸망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닥친 멸망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음식들이 쉽게 버려지는지, 얼마나 많은 옷들과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이 버려지고 있는지, 그 흥청망청한 모습을 보노라면 반드시 벌을 받겠다는 예감이 무섭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발터 카스퍼 추기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음식을 버리는 것이 죄라고 배웠습니다. 음식을 버리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에 감사하지 않는 것이며, 음식을 얻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져야 하는 굶주린 이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굶주리는 사람이 사는 세상이 있고, 음식을 만든 후 의도적으로 폐기하는 세상이 있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청하며, 주어지는 양식에 감사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발터 카스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분도출판사, 98쪽)

벌써 수년째 비가 내리지 않아 목마름을 호소하고 있는 하느님 백성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쉽게 허투로 버리는 물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됩니다. 대제국의 멸망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의 집인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는 자연 재앙의 징후들을 보면 두렵고 끔찍할 정도인데, 환경 보존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죄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죄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에 존재하는 폭력은 흙과 물과 공기와 모든 생명체의 병리 증상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억압받고 황폐해진 땅도 가장 버림받고 혹사당하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땅은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로마 8,22)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흙의 먼지라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창세 2,7 참조).”(프란치스코 교황, 「찬미 받으소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항, 11-12쪽)

과연 제국의 멸망이 아닌 지구 멸망의 징후를 바라보면,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니네베 사람들처럼 머리에 재를 쓰고 단식을 선포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때문에 요나의 절박한 외침은 오늘 우리가 뼛속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경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요나 3,8)

제국의 멸망이 제국 내부의 타락과 부정부패와 온갖 파괴와 폭력에서 비롯되었듯이 지구의 멸망도 어느 외계인의 침략 때문이 아닌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의 착취와 파괴, 자연에 대한 폭력, 인간의 탐욕과 죄의식 없는 무관심이 멸망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금 피조물과의 평화로 돌아서야 합니다. 하느님 사랑의 마음으로 돌아설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삶의 실천이 있을 때, 하느님은 이 멸망을 멈추실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요나가 말을 건네옵니다.

“우리가 진정 회개의 삶을 살 때, 시작부터 인간을 사랑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타오르는 진노를 거두실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은 멸망에서 벗어나 생명이 뛰어노는 참으로 아름다운 평화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9-27 오전 8:32:0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