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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좌 정기방문] 교황 알현·사도 묘소 참배 2024-09-26

‘사도좌 정기방문’의 정점인 한국 주교단의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은 로마 현지시각 9월 20일 오전 8시30분 교황청 사도궁 클레멘스홀에서 열렸다. 교황은 주교회의 의장 주교의 발표 등 형식적인 절차를 생략한 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대화의 시간을 갖자고 청했다. 시노달리타스 정신에 따라 ‘형제적이고 공동체적인 대화’에 임하려는 교황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는 알현 후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에서 ‘교황님과의 만남은 사랑방 대화처럼 격의 없이 정겨운 분위기였다. 교황님은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든든한 큰 형님처럼 우리를 대하셨다’고 전했다. 시종 화기애애했던 알현 현장을 한국 주교단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화 형식으로 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하 교황):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대주교로 있을 때 한국 공동체가 본당으로 승격됐다. 참 아름다운 공동체였다. 만남을 시작하면서 각자 허심탄회하게 말해주면 좋겠다. 목마른 사람은 뒤에 물병 있으니 마시면 되고, 화장실은 저쪽에 있다. 우리는 천사가 아니라 이런 것들이 모두 필요하다.(웃음)


이용훈 주교: 10년 전 방한하셔서 순교자 124위의 시복식을 주례하시고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셨다. 때문에 아직도 많은 한국인이 교황님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기도하고 있다. 한국의 몇몇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한반도는 79년째 남북으로 분단돼 있고 현재 남북 관계는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교황님의 기도를 청한다. 또한 한국 교회의 새 영세자 수 증가율도 감소하고 있고, 사제와 수도 성소도 십여 년 전에 비해 매우 급격히 줄고 있다.


교황: 하나의 한국이지만 두 개로 나뉘어 있는 한국의 상황이 참으로 쉽지 않다. 정치적 해법을 잘 찾아야 한다. 분단된 한국의 상황은 큰 고통이며,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여러분의 고통을 저도 잘 알고 있으며, 이 고통의 상황이 빨리 개선되고 종결되도록 기도하겠다. 사제와 수도 성소의 급감은 서구에서는 ‘보통의 상황’이다. 저출생 문제도 연관돼 있다.


손희송 주교: 의정부교구는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이한다. 교황님의 축하와 격려 말씀을 부탁한다.


교황: 기꺼이 할 것이다. 그런데 의정부교구의 신학생은 몇 명인가.


손희송 주교: 44명이다.


교황: 이제 겨우 20살이 된 젊은 여인이 벌써 44명의 아들을 두었으니 대단하다.(웃음)


정신철 주교: 많은 주교가 피데이 도눔(Fidei donum)으로 더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천교구도 현재 10여 명의 사제를 파견하고 있다. 그런데 어려움이 있다. 피데이 도눔으로 선교사를 파견한 현지 교구의 주교와 이야기를 모두 마쳤는데 그 주교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주교가 바뀌더라도 교구와 교구 사이의 계약은 지속돼야 하는데, 주교들이 그것을 잘못하는 것은 우리 주교들의 실수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 말씀드린다.



절차 생략한 자유로운 대화
한반도 평화 위한 기도 약속
하느님 백성 목소리 경청하고
생태 감각 일깨워 줄 것 주문



교황: 주교님들의 선교 정신에 감사드린다. 어떤 주교님은 선임자 주교님이 해놓은 것을 존중하지 않고 새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주교님은, 선교사가 주교에게 보내진 것이 아니라 그 교구에 보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 주교님은 교구의 역사를 잘 이해해야 하고, 그 선교사가 계속 활동할 수 있게 도와야 하고, 선교사의 소속 교구도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여러분들의 사제들과 수도자, 선교사들에게서 열정이 느껴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좌주교였을 때 한국의 수도자들이 선교사로 와 있었다. 그분들은 오자마자 병원 사목을 하셨는데, 스페인어를 못해도 미소로 사람들을 대했고, 모두가 그들을 매우 좋아했다. 미소가 최고의 선교다.


권혁주 주교: 지금 한국 교회는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걷고 있다. 안동교구는 농촌 교구이기 때문에, ‘생명 농업’, ‘친환경 농업’을 하는 사람들이 어렵게 농사를 지으며 특별히 땅을 살리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농민들을 위해 위로의 한 말씀 부탁드린다.


교황: 생각하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몇몇 신부들은 생태 이야기를 왜 하나,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생태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우리 어머니인 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일깨우기 위한 생태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 캐나다 토론토의 어민들이 방문했었다. 그들의 이야기인즉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치면 물고기 반, 쓰레기 반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 생태적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찬미받으소서’와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를 잘 공부할 수 있도록 주교님들이 이끌어 주셔야 한다.



옥현진 대주교: 시노드 제2회기가 10월에 개최된다. 교황님께서 두 해 동안 시노드를 개최하시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내에서 시노달리타스 정신에 따라 모든 교구가 하느님 백성으로 움직이는 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 교황님께서 전 세계 교회 안에서 시노드 정신을 구현해 나갈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지, 아니면 성령께 맡겨드리시는지 여쭙고 싶다.


교황: 동방교회가 주교들을 뽑을 때는 후보자를 교황께 올리면 교황이 추인해서 보내는 방식으로 시노달리타스를 살아왔다. 그런데 서방교회는 그 정신을 잃어버렸다.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말미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시작했다. 이후 6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서방 교회가 시노드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었다. 천천히 시노드 정신이 무언지 이해했다. 시노드 정신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노달리타스는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노달리타스 정신 안에서 주교님이나 수도회 장상들의 능력은 신자들의 말을 듣고 함께 일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데 있다. 신자들의 모임, 본당, 교구청 어디서나 사람들은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소통은 주님의 은총이다. 우리 시대에, 바오로 6세 교황님께서 의도하셨던 것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시노드의 여정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바오로 6세의 ‘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를 읽고 또 읽으면 좋겠다. 문헌의 내용은 지금도 유효하다. 오늘날의 교회를 위한 명작이다.


한정현 주교: 주교로 살아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업무적인 부분에 초점을 더 두게 된다. 교황님께서도 교구의 주교로 지내시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업무는 무엇인지, 어떻게 주교로 잘 살 수 있는지 여쭙고 싶다.


교황: 한국과 문화가 많이 다르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길 위의 주교’로 살려 노력했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탔기에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버스에 타면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하고 인사했다. 그렇게 사람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과 같아지려고 한 것은 아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네 가지 친밀함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첫째는 하느님과의 친밀함이다. 이는 베드로 성인이 알려준 것이다. 부제직을 세울 때 ‘우리에게 해당하는 것은 기도와 말씀 선포’라고 말한다. 따라서 주교의 첫 번째 책무는 하느님과 친밀함을 쌓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다.


둘째는 주교들 사이의 친밀함이다. 주교회의 안에서 당파를 만들지 말라. 의견의 다름을 인식하고 나누는 것이 좋지 뒤에서 비난하는 것은 좋지 않다.


셋째는 사제들과의 친밀함이다. 주교들에게 항상 휴대폰 번호를 사제들에게 알려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제가 전화하면 오늘 바로 응답하거나, 아무리 늦어도 다음날까지는 응답하라. 어떤 사제가 주교님에게 전화하면 비서실에서 받아 ‘이번 달은 어렵고 다음 달에 가능하다’고 답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러면 안된다. 사제들에게 부성(父性)을 드러내라.


마지막은 하느님 백성과의 친밀함이다. 사람들과 가까이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특히 더 고통받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특히 더 신경을 써 달라.


김선태 주교: 기쁜 소식 한 가지를 교황님께 말씀드리고 싶다. 2014년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시복하셨는데, 2021년 첫 순교자의 유해를 발견했다. 오랜 노고 끝에 찾게 된 선물이다. 유해 발견의 의미는 순교자들처럼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삶의 가장 우선에 두고 우리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며 살라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유해 발견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은 것 같다.


교황: 순교자는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이어서, 앞으로도 전달해줘야 한다. 젊은이들이 순교자의 유산을 잊지 않도록 잘 가르치면 좋겠다.


정순택 대주교: 세계청년대회를 위해 서울대교구와 모든 교구가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은 능력있고 열정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많은 어려움이 있다. 사회 구조로 인해 경쟁이 치열하고, 젊은이들의 극단적 선택 비율도 전 세계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또 사회 내에서 남녀 사이의 젠더 갈등이나 세대 갈등도 크다. 이런 어려움 속에 한국교회는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며 단순히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이 과정 안에서 젊은이들이 사회의 주인공으로 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교황: 교회는 젊은이에게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식별을 잘 해가며 조심스럽게 그들을 동반해야 한다. 그들 가까이에서 그들이 질문할 수 있도록 개방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들과 있을 때 “안돼”라고 하면 그들은 바로 문을 닫고, 관계는 끝이 난다. 젊은이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젊은이들은 항상 시끄럽다. 시끄러움이 그들의 사명이기도 함을 알고 대화하며 그들과 기꺼이 동반해야 한다.


젊은이뿐 아니라 어르신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어르신들은 한 백성의 기억이다. 젊은이들이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대화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어르신들이 한쪽 구석에 모셔져 있어서는 안 된다. 삶의 경험이 있는 그분들이 가족 안에 있는 것이 이상적이다. 어르신들이 밀려나 있는 것은 젊은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어르신들과 대화해야 한다.


우리 한국의 주교님들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또한 성소자 발굴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다. 한국어로 성모송을 바치며 이 시간을 마무리하자.



■ 한국 주교단, 성 베드로 대성당·성 바오로 대성당 미사….사도 묘소 참배
     “우리는 베드로 사도와 후계자인 교황님과 함께 하나의 교회임을  미사 통해 드러내고 있다”


한국 주교단은 9월 20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사도 베드로 묘소 앞 경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묘소를 참배했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베드로 대성당의 심장이자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순례객들이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이곳에서 봉헌하는 미사를 통해 우리는 베드로 사도와 그의 후계자인 교황님과 함께 하나의 교회임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베드로 사도의 무덤 앞에서 같은 신앙을 굳게 고백하며, 우리의 주교직이 깊은 유대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기억하자”며 “베드로와 사도들이 하나의 사도단을 이뤘듯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사도들의 후계자인 우리 주교들도 서로 결합돼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고 했다.


이 주교는 “우리 한국교회에는 개인주의, 경제제일주의, 인구 절벽과 고령화, 늦은 혼인, 출산 기피, 결혼 포기, 교우들의 신심 약화, 청소년 신앙생활과 신자 증가율 감소, 사제와 수도 성소 감소 등 어려움이 많다”먀 “이런 때일수록 우리 주교단이 연대해서 난국을 타개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9월 19일 오후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을 찾은 한국 주교단은 사도 바오로 묘소를 바라보는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미사 후 묘소를 참배했다. 주교회의 부의장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 주례, 한국 주교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된 이날 미사에는 로마에 거주하는 한국 사제들과 수도자, 한인 신자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김종수 주교는 강론에서 “초대교회 당시 이방세계 선교를 위해 수많은 고통을 겪고 복음을 위해 순교하신 위대한 사도 바오로를 기억하며 세례를 받은 우리 모두, 특히 사제들은 더욱더 세상에 파견된 선교사라는 것을 느낀다”며 “주님께서 사도 바오로에게 부어 주셨던 영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시어 우리가 복음의 기쁨 안에서 충실한 선교사로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하자”고 당부했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9-26 오후 4:12:07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