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가 교황청 문화교육부 장관 조제 톨렌티누 드 멘돈사 추기경에게 선물을 건네고 있다.
교황청 부서 방문은 베드로·바오로 사도 무덤 참배, 교황 알현과 함께 진행되는 앗 리미나(Ad limina, 사도좌 정기 방문)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다. 한국 주교단은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교황청 부서 11곳과 국무원·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신앙교리부 산하 미성년자보호위원회를 방문하며 강행군을 이어갔다. 주교들은 총 15곳 부서와 교황청 기구를 일일이 방문해 각 부서 장관들을 만나 교구 현황을 공유하고, 보편 교회와의 일치를 재확인했다. 사도좌 정기 방문이 끝난 후 주교들은 21일 평신도가정생명부를 찾아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와 관련된 논의를 이어갔다.
성직자부(장관 유흥식 추기경)를 방문한 한국 주교단이 다 함께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성가로 노래하고 있다.
성직자부·복음화부·문화교육부 등 11개 부서 방문
주교단은 하루에 3~4곳 부서를 방문해 각 부서 장관 및 차관·실무자들과 마주 앉아 미리 제출한 보고서를 살펴보며 한국 교회 현황과 과제를 두루 살폈다. 부서 방문은 환영 인사를 나눈 후 시작기도를 바치고, 자기소개 후 보고서 발표 및 자유 토론 순서로 진행됐다. 각 부서 방문은 짧으면 1시간, 길면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바티칸 밖에 위치한 교황청 부서들을 방문할 때 주교들은 사도좌 정기 방문 중 주교들의 이동을 지원하는 봉사단체(L''0pera della Chiesa)의 도움을 받았다.
주교단의 방문 시간이 가장 길었던 부서는 교황 직속 복음화부에 속하는 ‘첫복음화와 신설개별교회부서’(장관 직무대행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였다. 복음화부는 선교 지역을 관장하고, 기존 인류복음화성과 새복음화촉진평의회 역할을 통합한 핵심 부서다. 다양한 민족과 문화 안에서 지역 교회를 지원하는 곳이다.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며 한국 주교단을 친근하고 소탈하게 맞이했다. 주교들이 돌아가며 각자 교구와 자기 소개를 하자, 타글레 추기경은 해당 교구와 연관있는 장소를 언급하며 친밀하게 소통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는 첫복음화와 신설교회부서에서 한국 사회의 저출생 고령화 현상을 설명하며, 코로나 이후 한국 교회의 복음화 현황을 공유했다.
가장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만남을 시작한 부서는 한국인 장관이 있는 성직자부였다. 장관 유흥식 추기경은 미리 마중 나와 주교들을 한 명씩 포옹하며 환대했다. 유 추기경은 주교들에게 성직자부를 소개한 후 추석을 맞아 손잡고 ‘주님의 기도’를 노래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주교단이 부르는 ‘주님의 기도’는 성 베드로 광장으로 창이 난 성직자부에 울려 퍼졌다. 주교들은 성직자부 집무실에서 유 추기경과 사진을 찍고, 피자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유 추기경은 한국 주교들에게 “성직자부를 포함한 교황청 부서는 지시하거나 관리·감독하는 곳이 아니라, 지역 교회에 봉사하는 곳”이라며 “그래서 지역 교회 주교님들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하고, 주교님들의 이야기를 청해 듣고 싶다”고 운을 뗐다. 주교들은 ‘신학생 양성 과정에서 시노달리타스를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원로 사제 처우에 대한 지침이 있는지’, ‘경제적 성장으로 윤택해진 사제의 삶에 대한 지침이 필요하지 않은지’ 등을 물었다.
김종강 주교(맨 왼쪽)가 시성부에서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의 꽃’을 주제로 한국 교회의 시복시성 안건을 소개하고 있다.
주교단은 교황의 대내외적 활동을 특별히 보좌하고 교황청 전체 운영을 관장하는 국무원도 방문했다.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외무장관 폴 리차드 갤러거 대주교는 악화한 남북 관계에 우려를 표하며 “북한에 도움을 주기 위해 계속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어려운 시기이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밖에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김종강(청주교구장) 주교는 시성부에서 가경자 최양업 신부를 포함해 현재 교황청 단계에 있는 시복 안건 5개를 소개했고, 주교들은 시복시성에 관련된 질문들을 던졌다. 이에 시성부 장관 마르첼로 세메라로 추기경은 “많은 사람이 청원하는 후보자가 언제 시복시성될 지 궁금해한다”면서 “하지만 그것은 시성부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청원하는 이들의 기도에 달렸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시복시성에 관한 열망은 이해하지만, 절차가 명확해야 한다”며 “「성인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책 제목처럼 시성부에서 성인을 계속 생산해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종교간대화부를 방문한 한국 주교단이 종교간대화부 차관 인두닐 자나카라타나 코디투와꾸 칸카남라게 몬시뇰에게 벽에 걸린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작품은 이탈리아 화가(Dolores Puthod)의 작품 '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로, 종교간 대화를 주제로 담아냈다.
환대와 감사··· 높아진 한국 교회의 위상
빠듯한 일정 속에서 한국 주교단은 11개 부서와 교황청 기구들을 방문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의무적으로 방문해야 하는 부서가 늘어난 데에는 사도좌 정기 방문이 지역 교회들이 의례적으로 실시하는 인사치레가 아니라 교황청과 지역 교회 간 유대를 내실 있게 다지려는 교황의 의지가 담겼다. 한국 교회 입장에서는 교황청 부서의 역할을 좀더 명확하게 파악하고, 보편 교회의 일을 관장하는 교황청 부서들과의 유대를 다각도로 강화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9년 만에 열린 사도좌 정기 방문은 부서에 따라 깊이 있는 구체적 논의가 오가기도 했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개괄적인 내용만 다룬 부서도 있었다. 한국 주교들은 “교황청이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역동적이고, 세계 교회에 많은 공헌을 한 것에 대해 감사와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 주교단은 부서를 방문할 때마다 장관과 차관·직원들에게 홍삼과 한국 부채·손수건을 선물했다.
교황청립 로마한인신학원장 정연정 신부(맨 왼쪽)가 사도좌 정기 방문 중인 한국 주교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주교회의 성직주교위원회 위원(축성생활 담당) 구요비(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는 수도회부에서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와 한국 남자 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현황을 소개했다. 구 주교는 “한국의 남녀 수도회가 직면한 최대 어려움은 수도자 성소의 격감”이라며 “그러나 수도회 본연의 정체성과 카리스마를 살 때 성소 위기를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는 “9년 만에 열린 사도좌 정기 방문인데 예전과 달리 한국 교회에 대한 큰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한국 교회의 역할과 참여를 요구하며 기대하고 있고, 그래서 아시아에서의 한국 교회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앗 리미나였다”고 평가했다.
사도좌 정기 방문에 처음 참석한 청주교구장 김종강 주교는 “보편 교회 안에서 한국 교회의 위치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한국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한국으로 돌아가 선교와 교회 일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더 잘 파악하고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교황청 부서 방문시 통역은 교황청 복음화부 국장 한현택 몬시뇰과 로마에서 유학·거주하고 있는 김남균·김성수·선지민 신부가 맡았다.
바티칸=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