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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성당 순례(4)] 옛 서둔동성당 | 2024-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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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성지에도 순교자를 기리는 성당이 있지만, 교구 내 222개 본당 중에도 순교자를 기리는 성당이 있다. 바로 제1대리구 서둔동본당의 옛 성당은 전 교구민이 뜻을 모아 순교복자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복자성당이다. ■ 토착화를 추구한 성당건축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호서로21번길 32. 골목길을 오르자 붉은 벽돌에 푸른 지붕이 올라간 건물이 보인다. 옛 서둔동성당이다. 일단 건물의 형태가 독특하다. 성당 전체가 타원형에 가까운 8각형의 형태다. 벽돌을 쌓아 올린 외벽 위로는 마치 한옥의 정자를 떠올리게 하는 기와가 올라가 있다. 그리고 기와가 올라간 처마와 외벽 사이에 지그재그 형태로 창문이 자리하고 있다. 8각형의 건물보다 인상적인 건 8각형의 측면에 해당하는 자리에 세워진 종탑이다. 입구이자 종루인 이 탑은 높이가 자그마치 18m에 달한다. 본 건물의 높이인 9m의 두 배에 달하는 높이다. 종탑에는 사각 정자형태의 기와지붕과 그 위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성당이 언덕 위에 세워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건축 당시에는 서둔동 어디에서나 이 종탑이 보였을 만하다. 1969년 완공된 이 성당은 토착화를 추구한 외관으로 건축 당시 눈길을 사로잡았다. 토착화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해 사람이 되신 것처럼 선교지역의 문화에 적응해 교회의 본질을 실현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토착화는 1965년 종료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강조된 개념으로, 옛 서둔동성당은 공의회의 정신을 성당 건축을 통해 추구하고 있다.
국회의사당 등 국내 유명 건축에 참여한 바 있는 서울대학교 윤장섭 교수가 설계한 이 성당의 외관만이 아니라 내부도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설계돼 건축학계에서 평판을 얻은 바 있다. 특히 외벽에서 1m가량 떨어진 자리에 세워진 14개의 기둥이 돋보인다. 이 기둥들은 지붕하중을 지지하는 공포대를 떠받드는 형태로 설계됐는데, 노출콘크리트 기법을 사용한 배흘림 양식으로 제작됐다. 내부 골조를 노출시켜 그 자체로 건축적인 장식으로 삼았고, 외벽과 지붕 사이에 자리한 창문으로 성당 전체를 자연광으로 밝게 채울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현재 이 성당은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고, 본당의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어, 성당으로 사용할 당시의 내부 모습을 볼 수는 없다. ■ 순교자를 기리며 우리나라 전통 건축의 미를 성당건축에 녹여낸 것만이 토착화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옛 서둔동성당은 순교복자를 기리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성당은 외벽과 지붕 사이에 창문을 둬 자연채광이 가능하도록 설계됐지만, 건축 당시 벽돌로 이뤄진 외벽에는 별도의 창문이 없었다. 이런 설계로 순교자들이 붙잡혔던 감옥을, 그리고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피난처 카타콤바를 떠올리게 해줬다. 주교회의는 병인박해 100주년(1966년)을 앞둔 1965년 각 교구마다 병인박해 순교복자를 기념하는 성당을 건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당시 아직 복자였던 한국 순교자들을 전국적으로 현양하기 위한 다양한 순교자 현양사업 중 가장 주된 결정 사항이었다. 이에 교구는 1965년 6월 15일 열린 사제회의를 통해 순교복자 기념성당 설립을 위해 논의했다. 교구는 당시 신자수가 증가하고 있던 서둔동에 복자성당을 건립하기로 하고 교구 차원에서 성당 건축비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옛 서둔동성당을 세울 당시 교구장 윤공희(빅토리노) 주교는 교서를 통해 교구민 한 명, 한 명이 순교정신을 따르며 절약한 돈을 모아 성당건축기금으로 봉헌하기를 권장했다. 그저 성당건축을 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교정신을 따르는 봉헌을 통해 신자들이 순교자들의 얼을 되새기고 신심을 깊이 할 수 있도록 도모했던 것이다. 이런 방침에 따라 전 교구민이 성당건축기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교구 사제들도 매달 2대의 미사예물을 봉헌하는 방식으로 기금 모금에 함께했다. 그러나 교구민들의 십시일반 모금으로는 건축기금 마련에 어려움이 있었고 교황청의 원조금과 서둔동본당 신자들의 성금을 바탕으로 건축기금을 마련했다. 이런 준비과정을 통해 1968년 5월 서둔동본당을 설립하고 성당 건축에 들어갔다. 마침 그해 10월 병인박해 순교자 24위가 시복돼 의미를 더했다. 또 성당이 완공된 1969년 9월 16일은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새남터에서 순교한지 12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옛 서둔동성당은 순례지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교구 내 조성된 성지들처럼 전적으로 순례를 위한 공간으로 자리했던 것은 아니지만, 복자성당으로서 순교복자를 현양하고자 하는 이들이 순례하곤 했다. 1973년에는 한국의 성지들을 순례한 일본 히로시마교구의 신자들이 이 성당을 순례하며 성체조배를 하기도 했다. 서둔동본당은 본당 신자수의 증가로 302.34㎡ 규모의 옛 서둔동성당으로는 전례공간이 충분하지 않게 되자, 새 성당을 건축했다. 그러나 옛 성당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고, 성당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옛 성당 입구에 기록해 성당의 역사를 기억하고,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정신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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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10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