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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이탈리아 문화전쟁 선봉에 선 교황과 어느 장군 | 2024-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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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이주민 관련 논쟁이 커지는 가운데 두 유명 인물이 각 진영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고 다른 한쪽은 전 군 장성 로베르토 반나치로, 반나치는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교황과 가장 대척점에 서는 정치가일 것이다. 반이민 정책을 주장하는 동맹당의 유럽의회 의원인 반나치는 8월 29일 페이스북에 교황의 발언을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교황은 바로 전날 수요 일반알현 자리에서 이주민을 거부하는 것은 ‘중대한 죄’라고 강조했다. 반나치의 반반글은 단호했다. 그는 “교황청은 항상 국경(교리)을 아주 잘 지키고 있고 이를 존경한다”면서 “그렇다면 이탈리아는 왜 똑같이 하면 안 되는가?”라고 썼다. 이어 “이주민의 죽음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들이 떠나지 못하게 막는 길뿐”이라면서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머물 권리라는 개념을 강화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언론은 빠르게 반응했고, ‘장군과 교황 사이의 논쟁이 격화하고 있다’가 관련 기사들의 주요 제목이었다. 물론 교황을 비롯해 이탈리아 주교회의 고위급 인사 등 교회 지도자들의 이주민 관련 언급에 반박한 정치인은 반나치 혼자만이 아니다. 하지만 반나치라는 인물의 반박으로 논란은 더 커졌다. 공수부대 출신으로 55세인 반나치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활약했는데, 2023년 「거꾸로 뒤집힌 세상」 (Il Mondo al Contrario)이라는 책을 발간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책에서 동성애를 ‘비정상’이라고 언급하고 동성애자들에게 “동성애를 극복해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또 배구 스타 파올라 에고누에 관해서도 에고누가 이탈리아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신체는 이탈리아를 대표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에고누는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올해 파리 올림픽에서 이탈리아 배구팀을 이끌어 금메달을 땄다. 반나치는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견해를 전했으며, 노숙인들이 빈집이나 빈 건물을 점유하는 것도 반대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노숙인들이 빈집에 거주하는 일은 흔하며, 애덕봉사부(교황자선소) 장관이자 교황의 오른팔인 콘라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이를 지지하고 있다.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책 발간 후 이탈리아 국방부 귀도 크로세토 장관은 “그의 책은 이탈리아 육군과 국방부, 헌법에 불명예를 일으켰다”면서 그의 보직을 해임했다. 이탈리아 육군은 조사를 통해 “반나치가 이탈리아 군대가 지녀야 할 중립성과 객관성에 해를 입혔다”고 발표했다. 이에 반나치는 군복을 벗고 정계에 입문했다. 극우정당인 동맹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의 지지를 받은 반나치는 올해 6월에 열린 유럽의회 선거에 나가 50만 표 이상을 얻으며 당선됐다. 이탈리아에서 반나치 보다 많은 표를 얻은 후보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뿐이었다. 하지만 이후 살비니 대표와의 관계가 틀어졌는데, 반나치가 큰 득표를 얻은 반면 동맹당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내지 못했고 이후 열린 설문조사에서 동맹당의 지지도가 형편없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열린 이탈리아 정당 선호도 조사에서 이탈리아 국민 10%는 반나치가 세우려는 새 정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동맹당 선호도보다 훨씬 높다. 반나치가 세울 새 정당의 이름은 ‘유럽주권당’으로 나토(NATO) 탈퇴와 미국의 헤게모니 거부, 유럽 각국의 군대 보유, 러시아와의 친선관계, 불법 이민 근절 등을 주장하고 있다. 육군 중령 출신으로 반나치와 각별한 사이인 파비오 필로메니가 작성한 이 정견에는 ‘산아 제한 수단으로서의 낙태 시술에 대한 보조금 지금 중단’도 들어있다. 비록 유럽과 미국 사이의 외교 정책 등 몇몇 주제에 관해서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의 입장과 같지만 이주민과 환경에 관한 정책에서는 분명 갈등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반나치의 페이스북 글은 반나치가 교황에게 공개적으로 대항한 첫 사례다. 아마도 그는 이탈리아 우파들에게 그의 글이 정치적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번이 반나치가 교회 지도자들과 처음 충돌한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이탈리아의 공교육을 비판했는데, 이탈리아 교육계가 평등에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나치는 각자 다른 능력을 지닌 학생들은 각각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관점에서 반나치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별도의 교실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이탈리아 주교회의 부의장 프란체스코 사비노 주교는 “반나치의 주장은 우리를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절로 데려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인종차별법을 적용했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시기와 같다고 지적한 것이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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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9-11 오전 9:32:08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