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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부터 | 2024-0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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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수필집 표지를 예술화하고 싶었다. 제자(題字)는 판본체 가로쓰기로 직접 쓰고 표지화는 좋아하는 문인화가에게 부탁해 기도를 상징하는 파란 장미꽃 그림을 받고 낙관은 서각가에게 부탁해 받아 낙인했다. 그런데 인쇄된 표지를 보니 가로 낙관이 세로로 바뀌어있었다. 즉시 출판사에 시정해 달라는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아 문자를 남겼다. 한참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으니 수정했다는 문자가 왔다. 얼마나 기쁘던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마도 품격 높은 수필집을 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하느님께서 도와주셨다는 감사함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 나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약속 시간에 맞추려고 바쁘게 걷는데 내 발걸음에 맞춰 건널목 신호의 파란불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신호 대기 선에 이르렀을 때 빨간불이 켜지면 “서둘지 말라.” 하시는구나 생각하며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1994년 천주교에 입교한 지 30년, 주일 미사만은 빠지지 않고 참례했다. 1997년 본당신부님께서 “나이 50이 넘은 공학도가 종교에 입교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시며 ‘꾸르실료’ 교육을 추천하셨다. 당시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다녀왔다. 또한 신부님께서는 “정년퇴임해 시간적 여유가 있으실 테니 사목회장을 맡으라”고 강권하셨다. 나의 신심이 바닥인 줄 알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에서 익힌 나의 성정(性情)대로 역할을 했다.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가랑비에 옷 젖듯 하느님의 사랑이 스며들었는가? 나도 모르게 천주교 신자의 언행으로 빠져들었다. 아침기도로 하루가 시작되고 삼종기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바치는 기도가 자연스러워졌다. 여행할 때는 묵주기도로 출발하고 일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일에 감사기도를 하게 되었으니 ‘천주쟁이’가 된 것은 틀림없다. 입교를 시점으로 세상은 급속히 발전해 삶의 질을 높게 변화시켜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변화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이 묘하게도 내 신앙생활의 변화와 일치한다. 입교 전인 60~80년대 고향에 가려면 꼬불꼬불한 국도를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해야 했는데 하루에 몇 대밖에 운행하지 않았다. 정류장마다 멈춰 승객을 태우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고,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입석 승객을 태운 만원 버스 안에서 짐짝 취급을 받아야 했다. 2009년 대전에서 당진까지 왕복 4차선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승용차를 운전해서 고향집 마당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지방의 학자로 40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자주 서울을 오르내렸다. 곧바로 출발하는 통일호를 타더라도 승차시간만 3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랬던 여정이 탑승 후 1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하는 꿈같은 세상으로 발전했다.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던 길이 이제는 승차감이 좋은 열차에서 경치를 감상하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치기도 하는 길로 바뀌었다. 정년퇴임 후 마음대로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늙은이는 서울을 오르내릴 때마다 시간을 쪼개 써야 했던 때와 격세지감의 감회를 느끼며 가슴 깊은 곳에서 감사함이 솟구친다. 이제 남은 삶은 피가 섞인 가족, 속 터놓고 지내는 친구들, 하느님의 사랑으로 서로 감싸는 교우들 그리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맺어진 지인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전하며 받은 은혜의 일부라도 보답하며 살고 싶다. 글 _ 이은웅 토마스 아퀴나스(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본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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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9-11 오전 9:32:08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