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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까지도 그리스도와 온전히 일치하고자 했던 사랑의 표징 2024-09-11

1224년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즈음,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육체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다섯 상흔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대못이 손과 발을 뚫는 고통이 그대로 성인을 강타했다. 올해로 800주년을 맞은 성 프란치스코 ‘오상 기적’ 이야기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통해 교회 내 가장 신비스러운 기적 중 하나인 ‘오상 기적’이 현대인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알아보자.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의 표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
시대의 신앙생활 맞게 해석해
신앙적 메시지로 이해해야



연민과 사랑의 성인


오상 기적을 증언하는 이는 프란치스코 성인 전에도 있지만,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모두 받은 성인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처음이라고 알려져 있다. ‘제2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라는 별명처럼 성인은 그리스도의 생애와 가르침을 충실히 따랐다.


새들과 대화하고 늑대를 순한 양으로 만들었다는 일화처럼 성인은 인간뿐 아니라 하느님이 창조한 모든 자연을 사랑하고 연민을 가졌다. 이런 면에서 오상 기적은 우주 만물에 대한 사랑, 더 나아가 그리스도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그리스도와 온전히 일치하고자 걸어온 성인의 삶과 맞닿아 있다. 그 오상 기적의 은총을 입은 건 그 삶의 여정이 거의 마무리돼 가던 때, 홀로 더 깊이 관상하기 위해 찾아간 라베르나 산에서였다.



홀로 고요함 속에서 받은 ‘오상 기적’


1224년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즈음 프란치스코 성인은 라베르나 산에 오른다. 성인은 40일간 동료들과 떨어져 단식과 금욕생활을 할 작정이었다. 세 명의 동료와 함께 지내는 것마저도 고요의 신비 속으로 젖어 드는 데 방해가 된다고 느껴 절벽 위에 홀로 지내겠다며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하느님의 거룩함, 선과 최고선, 사랑, 아름다움, 지혜, 겸손 등. 라베르나 산의 고독한 고요 속 성인이 깊이 관상한 신비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고요를 깨는 환시를 목격한다. 여섯 개의 날개를 단 세라핌 천사와 빛으로 휩싸인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나타났다. 기적은 환시로 끝나지 않았다. 성인의 두 손바닥과 두 발, 옆구리에 그리스도가 입었던 수난 상처가 그대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성인의 전기 「프란치스코의 잔 꽃송이」 2부 3장의 표현을 보면 손에 단순한 구멍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박혔던 못도 적나라하게 생겨났다.



수도복을 적실 정도로 피를 흘린 프란치스코 성인은 라베르나 산에서의 일을 감추고 싶었다. 하지만 형제 수도자들은 피에 물든 그의 수도복과 핏자국의 위치를 보고 이 일을 알아챘다. 상처는 아물지도 심해지지도 않았다. 끊임없이 성인에게 그리스도 수난의 고통을 그대로 안겨줄 뿐이었다. 하지만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와 일치하고자 했던 성인이 그토록 원하던 고통이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곧 눈마저 멀었다. 이즈음 라베르나 산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하며 믿음의 절정 속에서 드린 기도는 노래 ‘태양의 찬가’로 전해 내려온다. 성인은 2년 뒤인 1226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오상 기적, 하느님과 인간의 사랑으로 이해해야


오늘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세상에 사는 현대인에게 오상 기적은 비현실적이면서도 자극적으로 다가온다. 더불어 가시적인 기적에 대한 과도하고 잘못된 몰입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있다. 한국교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가톨릭 이단 ‘마리아의 구원방주’ 교주 윤홍선(나주 율리아)도 오상을 받았다며 주장한 바 있기에 더욱 그렇다.


작은형제회 고계영 신부(바오로·영성신학)는 “우리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오상 기적을 이 시대의 신앙생활에 맞도록 해석해 이해해야 한다”며 “성경 속 기적 이야기들을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하고자 하는 ‘신앙의 메시지’를 알아듣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결국 ‘오상’이 현재를 사는 신앙인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고계영 신부는 이어 “오상의 일차적인 의미는 하느님께서 성인을 사랑하셨다는 사랑의 인장이고, 또 성인이 하느님을 놀랍도록 탁월하게 사랑했다는 사랑의 표시”라며 “결국 오상 기적을 보고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것인지 깊이 헤아리며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무리 화려하고 놀라운 기적도 결국은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 오상을 받은 성인들


그리스도교 역사를 훑어보면 오상의 사례가 무려 400건에 이른다. 다만 대부분 가톨릭교회가 공인하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성인보다 앞서 우아니(Oignies)의 성녀 마리아도 같은 체험을 증언한다.


오상 기적의 은총을 입은 것으로 잘 알려진 또 한 명의 성인은 피에트렐치나의 비오 성인(카푸친 작은형제회·1887~1968)이다. 1910년 23세의 나이로 카푸친 작은형제회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가 된 지 1년 차부터 몸에 오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몸의 상처가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건 1919년부터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상처가 아물지 않고 피가 계속 흘렀다고 전해진다. 성인은 오상으로 인해 오해를 받아 3년 간 성무집행을 정지당하기도 했다.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도 오상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카타리나 또한 오상을 숨기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야 그 상처가 세상에 알려졌다.


다만 교회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오상만을 공식적으로 기념한다. 교회는 올해 1224년 프란치스코 성인이 오상을 받은 지 800년이 되는 해를 맞았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9-11 오전 9:32:08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