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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24주일 2024-09-11

좋은 질문을 던져야 좋은 답을 얻는다고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에서도 맹목적 믿음보다는 스스로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가르침을 주셨지만, 때로는 질문을 통해 사람들을 성장시키십니다. 예를 들어,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는 질문,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마르 3,33)는 질문은 단순히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성찰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도록 초대하는 질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던지신 가장 중요한 질문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에 대한 질문입니다. 복음의 전후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논쟁하고, 사람들의 병을 고치며, 마귀를 쫓아내시는 가운데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표징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의 답을 듣고, 다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엘리야 혹은 예언자 중 한 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틀을 통해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기존 관념으로 타인을 판단하게 되면,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단순히 뛰어난 가르침을 주는 스승님, 사람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인물, 초자연적 기적을 행하시는 신적 존재로만 본다면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지 깨닫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의 시각을 넘어, 제자들에게 자신과 함께 살아오면서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그들 자신의 언어로 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베드로가 이렇게 답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수제자 베드로의 대답이 정답처럼 들리지만, 그 후의 복음 내용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겪어갈 길에 대해 알려주시는데, 앞서 정답을 말한 베드로 성인이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요? 더 나아가 예수님은 베드로 성인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하며 야단치시는 장면까지 나오니 더욱 혼란스럽게 다가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따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분과 마음이 다 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그의 고백 역시 예수님을 진정 이해해서 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예전부터 들어온 그리고 기대해 온 그리스도라고 예수님을 판단하고 대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제자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나서서 그 힘든 길을 갔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진리를 찾고, 사랑을 나누고, 그런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수 있기를 그들은 원했습니다. 이 열망과 용기를 하느님이 심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길을 따라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신들이 생각한 메시아의 모습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의 진정한 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가 걸어가는 사랑의 길은 세상의 환호에 안주하지 않고, 반대자들의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하느님의 뜻을 살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 길을 걷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반박까지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뜻을 관철시키려 한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기대를 이루고자 합니다.


이런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면서 계속 함께 가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이나 욕망을 갖고 따르면 함께 갈 수 없기에 각자의 인생에 부여된 하느님의 사명을 갖고 따르라고 초대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제 삶을 돌아봅니다. 저 역시 하느님이 주신 열망 덕분에 예수님을 따른다고 했으나 어리석음과 두려움 속에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저와 함께 걸으셨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저는 무엇을 원하면서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1·2독서에서 말하고 있듯이 주님께서 함께하시기에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실천하는 믿음이 제가 예수님을 따를 때 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알려줘서 알 수 있는 분, 열심히 공부해서 알 수 있는 분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분은 늘 삶을 통해 자신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셨고, 지금도 그렇게 삶을 통해 만나게 되는 분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는 정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인생을 걸어가면서 질문을 던지시는 분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삶에서 예수님이 던지는 이 질문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가 고민하고 자신의 삶에서 진실하게 답을 찾아갈 때 비로소 예수님을 이해하게 되고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이 길을 걸어갑니다.



글 _ 현재우 에드몬드(한국평단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소장)


 


 


 


 

[가톨릭신문 2024-09-11 오전 9:32:08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