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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 고르넬리오 (9월 16일) | 2024-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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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마의 평범한 사제였던 고르넬리오 성인은 성 파비아노 교황이 순교한 뒤 14개월 만에 교황으로 선출됐습니다. 교황 선출이 오래 걸린 이유는 데키우스 황제의 극심한 그리스도교 박해 때문입니다. 교황이 된 고르넬리오가 이룬 주요 업적은 박해 중 배교를 선언했던 신자들을 용서하고 다시 교회로 받아들이는 화해 정책이었습니다. 데키우스의 박해로 인해 배교를 선언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박해가 끝나자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를 희망했습니다. 사도좌가 공석으로 있는 동안 로마 교회를 돌보던 노바티아누스는 새 교황 선출에 불만을 품고, 스스로 교황이라 칭하며 교회 분열을 심화시켰습니다. 게다가 그는 배교를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심지어 죽어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단죄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고르넬리오는 배교자가 합당한 보속을 행하면 교회에 다시 나올 수 있고 성사도 받을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주교도 교황의 이러한 뜻을 이해하고 지지했습니다. 노바티아누스는 소수의 지지자와 함께 새 교회를 세우고, 대립 교황이 되었습니다. 노바티아누스의 극단적 엄격주의를 옹호하던 이들은 재차 힘을 규합해 동방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이에 고르넬리오는 교회가 통회하는 배교자들을 용서할 권한이 있음을 재천명하고, 카르타고 공회의에서 이를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교황의 제의로 251년 10월 로마에서 개최된 공의회에서는 60명의 주교와 많은 사제와 부제가 참석했습니다. 이 공회의를 통해 고르넬리오는 노바티아누스와 그 추종자들을 단죄하고 교회 질서를 바로잡았습니다. 252년 6월 갈루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박해를 재개했을 때 고르넬리오는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현재 로마의 항구도시 치비타베키아인 첸툼첼레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당한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이듬해 6월 순교했습니다. 그의 시신은 후대 9월 14일에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 있는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의 루치나 묘역에 안장되었습니다. 그의 묘비명은 라틴어로 새겨진 최초의 교황 비문으로 ‘순교자’라고 적혀있습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14일 목록에서 고르넬리오의 순교자적 업적과 고난, 묘지 이장에 대해 기록하면서 전례적으로 치프리아노와 함께 9월 16일에 기념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노바티아누스 이단과의 대립 중에 고르넬리오와 치프리아노가 맺은 굳은 우정을 기억하기 위해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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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9-10 오후 2:32:05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