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초 디 부오닌세냐 작 ‘제자들을 가르치는 그리스도’, 1308 ~13011년.
오늘 복음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마르 8,27-30)는 예수님의 신원에 관한 물음으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어떤 이들은 요한 세례자, 어떤 이들은 엘리야,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들 중 한 분이라 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제자들의 대표인 베드로는 이렇게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고 그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을 거쳐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자신에 관하여 함구하도록 제자들에게 엄중히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당시 유다인들의 구세주 칭호가 예수님의 사명을 정의하기에는 불충분하고 그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다 민족의 정치적 독립과 현실적 번영을 이루어내는 구세주를 기대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회개와 용서, 봉사와 섬김으로 세상을 다스리며 인간을 위해 스스로 고난과 죽음까지도 감수하는 구세주로 오셨습니다.
두 번째(마르 8,31-33)는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사람들의 배척과 고난을 겪고 십자가 위에서 죽고 부활할 것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승리와 영광의 구세주를 기대했던 제자들도 수난받고 죽게 되는 구세주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을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했고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하시며 몹시 꾸짖으십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하느님 뜻에 순명하는 예수님을 반대하였기에 하느님을 반대하는 모든 세력의 인격화된 표현인 사탄으로 지칭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게서 물러가라’는 표현은 ‘내 뒤로 물러가라’, ‘내 뒤에 서라’는 뜻으로, 베드로가 수난의 길을 가실 예수님을 따를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교부는 이 말씀을 “베드로야, 너의 자리는 내 뒤이지 내 앞이 아니다. 너의 자리는 내가 선택한 길을 따르는 것이지 네가 가고 싶은 대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세 번째(마르 8,34-35)는 어떻게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분이셨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낮추셔서 수난과 죽음마저도 감수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이들도 그렇게 낮아지기를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마저 내어놓는 완전한 봉헌과 헌신의 길은 십자가로 표현되는 고통과 희생의 순간을 거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평화·희망으로 드러나는 부활의 영광입니다.
오늘 복음은 전체적으로 기본적 신앙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 즉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시다’라는 고백이 담고 있는 의미의 깊이와 무게를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 체험을 전달하는 신앙 진리가 죽은 문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끊임없는 실천이 뒤따라야 하듯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우리 믿음도 신앙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인격적 체험을 바탕으로 예수님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도 한층 더 견고해질 것입니다.
유승록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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