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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세운 대사제 2024-09-10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은 신약 성경 경전 가운데 유일하게 그리스도께 대한 핵심 칭호인 ‘대사제’가 나온다. 대사제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동시에 사람의 맏이로서 인류를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열어 주신 분이시다. 그리스도, 성 소피아 성당, 이스탄불.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히브리서)은 신약 성경 정경에 포함된 다른 서간들과 달리 보낸 이, 곧 글쓴이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신약 성경 정경 작업이 시작되던 2세기 때부터 교회 안에서 적지 않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동방 교회에서는 히브리서를 의심 없이 바오로 사도가 쓴 서간으로 여겼습니다. 교부들은 “우리의 형제 티모테오”(13,23)를 근거로 그렇게 믿어 왔습니다.

실제로 바오로 사도를 히브리서의 저자로 볼만한 근거는 서간 여기저기서 발견됩니다. 무엇보다 서간의 마지막 인사와 경고(13,16-15) 내용이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과 흡사합니다. 또 그리스도께 대한 가르침에서 히브리서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과 여러 일치점을 보여줍니다.

예로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히브 1,1-4; 1코린 8,6), 그리스도께서 수난과 죽음으로 낮추어졌다가 하느님 오른편으로 들어 올려졌다(히브 2,9; 로마 8,3.34; 필리 2,6-11),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옛 질서를 폐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세우셨다(히브 7,19; 8,6-13; 2코린 3,1-18)는 가르침입니다.

이런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서방 교회에서는 히브리서를 바오로 사도가 쓰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른 서간과 달리 히브리서에는 발신인의 이름이 없다는 점. 바오로 사도가 즐겨 사용한 “그리스도 예수님”, “그리스도 안에서”, “은총과 평화”란 표현이 히브리서에는 없다는 점. 구약 성경 인용 때 바오로 사도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또는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고 했는데, 히브리서는 “성경”이라는 말로 시작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라고 한 점.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대사제’라 하며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구원을 설명할 때 믿음보다 경신례와 관련된 용어를 자주 사용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직접 복음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갈라 1,12), 히브리서는 “주님께서 선포하신 구원을 들은 이들이 자신에게 확증해 주었다”(2,3)고 말해 차이를 보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협력자들 중 한 명이 히브리서를 썼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어떤 이는 레위 출신의 바르나바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다계 그리스도인인 아폴로라고도 합니다. 또 교리에 정통했던 프리스카와 아퀼라 부부라고도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가끔 자신을 ‘우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불분명하지만 받은 이는 당연히 히브리인들, 곧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히브리서에는 구약 성경을 인용하거나 구약성경 속 이스라엘에 비유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초대 교회를 이스라엘의 광야 세대로, 새 계약과 옛 계약, 레위인의 대사제직을 그리스도의 대사제직과 비유합니다. 또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모세의 율법이 규정한 희생 제사 틀 안에서 이해합니다. 그럼에도 성경학자들은 초대 교회에 유다계와 이방계 그리스도인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이 단지 유다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이방계 그리스도인과 함께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던 교회였다고 설명합니다.

히브리서는 대략 60~90년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서간에 언급된 티모테오가 감옥에서 풀려나 선교 여행을 하던 시기라면 1세기 후반이기 때문입니다. 또 로마의 클레멘스가 95년께 히브리서를 사용했기에 이보다 더 늦게 집필 시기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Εβραιουs’(프로스 에브라이우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Hebraeos’, 한국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라 표기합니다.

히브리서는 총 13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1,1─4,13)·그리스도의 사제직(4,14─10,18)·그리스도인의 삶(10,19─13,25)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계시가 어떤 것보다 뛰어나다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 완성된 영원한 구원의 약속은 천사들이 선포한 말씀을 능가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께 신임받은 사제이시며(3,1-6) 모든 사람과 굳게 결속된 자비로우신 사제이십니다.(4,14─5,10) 그분께서는 아론의 사제직을 이어받으셨지만(5,4-5) 그분의 사제직은 아론의 것을 뛰어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은 구약의 모든 제사를 대체하는 유일한 ‘참 제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통하여 천상 사제가 되시고(9,24) 죄를 없애는 정화를 실현하셨으며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세우셨습니다.(9,15; 13,20)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로, 하느님 자신이 당신의 아드님을 통해 인류에게 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셨습니다.(2,10)

그리스도인은 ‘단 한 번’(7,27; 9,12;10,10) 봉헌된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4,3)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본보기로 삼아 형제들을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찬양 제물”(13,15)로 삼아 지속해서 하느님께 봉헌해야 합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하나 되지 않고서, 또 형제들과 하나 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다다를 수 없음을 알려줍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4-09-10 오전 7:52:04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