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섭 작 ‘성 김대건 신부’, 2023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벽감에 설치된 김대건 신부 성상을 제작한 한진섭 작가의 초대전이 1일 서울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과 가나문화재단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9월 ‘순교자 성월’과 조선인 최초로 사제품을 받고 25세에 순교한 성 김대건 신부의 조각상이 지난해 9월 16일 베드로 대성전에 축성된 것을 기념해 마련됐다.
성 베드로 대성전 벽감에 한국인 성인상이 들어선 것은 처음이며, 대성전 안팎에 자신의 작품을 남긴 한국인도 한진섭(요셉)씨가 최초다.
한 작가는 “갓과 도포·영대를 착용한 동양 성인의 모습은 한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인들에게도 화제가 돼 현지 가이드들이 빼놓지 않고 소개한다고 들었다”며 “지난 1년간 개인적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내 삶을 돌아보면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것 같고 그만큼 자부심도 있다”고 전했다.
1956년생인 한 작가는 홍익대 미대·대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부터 이탈리아 카라라국립미대 조소과에서 수학했다. 카라라는 대리석 채석과 조각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탈리아에서 생활한 10년 동안 고종희 한양여대 명예교수를 만나 아이들을 낳고 요셉과 마리아로 세례를 받았다. 바티칸 작업에 앞서 대전교구청에 김대건 신부 조각상을 제작했고, 그 전후로 한덕운 복자상·정하상 성인상도 제작했다. 4년간의 교육을 마치고 지난 5월에는 프란치스칸이 되기도 했다. 한 작가가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큰 계획으로 생각하는 이유다.
한진섭 작 ‘우리들의 모습’, 1994년
한진섭 작 ‘자각상’, 1995년
이번 전시에서는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 과정과 함께 반세기에 걸친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돌아본다. 먼저 전시장 내 기획소강당에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1845년 8월 24일 첫 미사를 봉헌한 상하이 횡당성당에서 영감을 받은 공간을 조성했다.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한 작품을 축소 제작한 ‘김대건 신부 조각상’을 비롯해 ‘십자고상’, ‘십자가의 길’ 등 한 작가의 종교미술 작품이 펼쳐진다. 이와 함께 그가 50년간 작업한 다채로운 사람과 동물 조각도 시대별로 엄선했다. 작가는 큰 작품 작업에 앞서 형태와 구조 등을 파악하기 위해 찰흙으로 빚고 석고로 모형을 뜨는데, 관람객들이 제작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이들 모형도 전시한다.
한 작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 사람이고 완벽한 조형물이 인체라고 생각한다”며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일 수 있는 세상에서도 나만의 시선으로 줄곧 편안하고 따뜻한, 가족 중심적인 사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부피나 질감도 된장국이나 막걸리처럼 구수하고 조금은 퍽퍽한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며 “작품을 직접 만져보면 따뜻함이 전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관장 원종현 신부는 “일평생 돌을 소재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무한한 인간애와 차가운 돌 속에서 꺼낸 순수한 따뜻함과 행복함, 생명의 본질이 깃든 인간의 참모습을 작품을 통해 마주해 보시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시는 29일까지 박물관 휴관일인 월요일과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30분에서 오후 5시 30분 사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02-3147-2403,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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