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사회는 텔레그램 딥페이크(Deepfake) 포르노로 몸살을 앓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합성기술 앱들이 쏟아져 평범한 일반인들의 얼굴까지 음란물로 제작, 확산되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출처=Wikimedia Commons
한 마리의 새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높은 천장에서 갈팡질팡 헤매는 새는 통로를 찾아 이리저리 버둥대지만 빠져나갈 문이 없다. ‘에어컨’이라는 편리한 문명의 도구로 인해 틈이란 틈은 모두 막혀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무기로 새를 겨냥하지도 않았고 해칠 생각도 없다. 오히려 날아가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창문이 없는 건물 자체가 새에게는 끔찍한 폭력의 공간이며 카오스다. 창문은 공간의 경계를 나눈다. 경계는 거리를 확보하고 타자를 존재하고 인정해주는 통로다. 경계를 나누는 문의 소멸은 혼돈 그 자체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다면?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면? 원본과 가짜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가상공간에서 많은 일상의 시간을 보낸다면 현실과 가상공간과의 경계도 사라진 셈이다. 인공지능이 나체 사진을 클릭하고 누군가의 사진 한 장을 선택해서 합성한다면? 나체 사진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음란물 영상에 누군가의 사진을 도용해 합성한다면? 주체와 타자의 구분이 해체되고 편집되어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구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텔레그램 딥페이크(Deep fake) 포르노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게 뭐지?’ 하는 사이에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생소한 범죄 이슈가 터져 나온다. 유명인의 얼굴로 여론을 조작한 가짜뉴스가 문제된 것이 최근인 것 같은데, 이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합성기술 앱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평범한 일반인들의 얼굴까지 음란물로 만들어져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더욱이 다수 가해자인 어린 초등학생부터 중고생과 군인들에게까지 놀이문화처럼 퍼져가고 있다는 것이 무척 우려스럽다.
성장기 청소년들이 성적 호기심으로 포르노그래피를 친구들끼리 공유하는 일은 새롭지 않다. 누군가는 잡지와 만화에서 혹은 CD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음란물을 접했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의 보급으로 음란물은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고 이제는 구경을 넘어 직접 제작하고 유포하면서 성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N번방 사건과 불법촬영, 그리고 딥페이크 성범죄 중심에 어린 청소년들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딥페이크 합성범죄 10명 중 7명이 10대이며, 전문가들은 병리적 자기애를 원인으로 꼽는다. 건강하지 못한 자기애는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경계가 모호하다. 나와 타자(他者) 사이에 ‘통로’가 없어 타자는 그저 나의 그림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타자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분별심을 잃은 채 과시욕과 허세로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범죄를 저지르고 그저 ‘장난’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너를 해칠 생각은 전혀 없고 그냥 놀이었을 뿐’이라는 말일 것이다.
디지털 공간에서의 폭력은 복잡하고도 불확실한 혼돈으로 존재한다. 폭력의 손길은 일상과 가상을 넘나든다. 결국 우리는 일상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카오스의 공간에 갇히게 된다. 빛과 어둠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지 않은 카오스다. 실제의 폭력성과 가상의 폭력성은 서로 교류하면서 동시에 흘러 녹아들어 일그러진 ‘놀이문화’가 되었다.
‘놀이’는 타자와의 상호교류 공간에서 일어나는 창의적 활동이다. 놀이에는 들어가고 나갈 수 있는 문이 있어 실수로 들어간 공간에서 다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도 경험한다. 나와 타자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고 그 거리를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 놀이다. 하지만 타자가 없는 어두운 골방에서의 디지털 놀이는 열고 나갈 문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철학자 한병철은 「에로스의 종말」에서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상품으로 전시하고 구경거리로 만듦으로써 사회의 포르노화 경향을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포르노는 전시의 대상이 된 벌거벗은 삶과 관련되면서 오히려 에로스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통한 생명 에너지인 ‘에로스’를 잃고, 오로지 상업적 전시성에만 몰두하면서 점점 더 포르노화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딥페이크 성범죄의 그늘 속에 많은 청소년이 신음하고 있다. 생명 에너지인 ‘사랑’을 배우기도 전에 전시하고 상품화하는 포르노에 빠지게 하는 자본주의의 폐해에서 이들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문이 있는 아날로그 공간에서 따스한 존중의 거리를 체험하는 예방교육이 시급한 때다.
<영성이 묻는 안부>
원본과 복제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진짜와 가짜의 차이도 무의미해지고 있습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어려워 무엇을 신뢰하고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한 생각도 듭니다. 미디어 이론가인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은 매체 환경은 인간의 감각기관 확장을 가져왔고 우리 사고와 행동방식, 그리고 지각방식까지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적 효과는 지각의 마비현상을 가져왔다고 하지요.
그렇기에 아날로그 공간 경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경계 없는 디지털 놀이에서 잠시라도 빠져나와 아날로그 ‘놀이’로 타인과 눈을 맞추고 존중하는 즐거운 체험의 장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우리는 현실 세상에서 느껴지는 감각자극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기억했을 때에야 비로소 도덕적이고 영성적인 감각 속에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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