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노의 수의’ 네거티브 필름 이미지. 출처=L’art et la Science, Jean-Pierre MOHEN
요한 복음에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놓여있는 동굴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의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시신을 쌌던 아마포와 얼굴을 쌌던 수건만 발견했다는 구절이 있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난다는 부활 사건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간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굴에 남겨진 아마포와 수건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남긴 유일한 물증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실제로 예수님의 수의가 존재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토리노의 수의(Shroud of Turin)’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이탈리아 토리노의 성 요한 주교좌성당에 보관되어 있어 이같이 불린다. 관련 기록에는 이 수의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왔으며, 1349년 프랑스 트루아에 있다는 내용이 있다. 그 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1578년 프랑스의 샹베리에서 지금의 토리노에 이르게 되었다.
4.41×1.13m 크기의 수의에는 어렴풋이 길게 누운 남자의 앞과 뒤 흔적이 찍혀 있어 막연하게 예수님의 수의라고 짐작할 뿐 당시로선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현재와 같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898년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세콘도 피아(Secondo Pia)가 찍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그가 촬영한 수의의 네거티브 필름(사진의 원판, 우리가 보는 흑백 음영이 반대로 나타난다)에 예수님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얼굴이 너무나 뚜렷하게 나왔다. 이를 보고 놀란 피아는 즉시 이 사실을 교회 당국에 알렸으나, 그가 사진을 조작했다고 의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부터 이것의 진위를 밝히기 위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31년 기우세페 엔리(Giuseppe Enrie)라는 사진사가 찍은 네거티브 이미지로 인해 대중에게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예수의 기적이라고 여겨졌다. 대중의 반응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이후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마침내 미국·영국·스위스 과학자들이 과학적인 절대 연대 측정을 한 결과가 1989년 네이처(Nature)지에 발표되었다.
최종 탄소연대 측정 결과, 이들 연구소는 공통적으로 수의의 제작연대를 1260년에서 1390년 사이로 추정하였다. 역사 속에서 이 수의의 존재가 최초로 알려진 기간과 일치하며, 예수님이 돌아가신 시기와는 1000년 이상 차이가 난다. 이에 따라 수의에 찍힌 형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음에도 공식적인 후속 연구는 중단된 상태다. 수의에 대한 거듭된 진위 논쟁으로 가톨릭 신앙이 지나치게 신비주의적 경향으로 가는 것을 경계한 판단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탄소연대 측정 조사 방법에 대해 깊은 신뢰를 반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진위 논란은 계속되지만, 가톨릭교회는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역대 교황들은 토리노 성 요한 주교좌성당을 방문해 성의를 참배했고, 진위보다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더 잘 이해하고 묵상하도록 돕는 매개체로서 의미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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