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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친밀한 관계 맺기 | 2024-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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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啓示)라는 말은 오늘날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을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아는 신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계시라는 말이 지닌 모호함으로 인해 오해도 많이 생긴다. 한국 신흥-유사종교에서 ‘직통 계시’, ‘천국 비밀의 계시’ 등의 표현이 종종 등장하는데, 자신들의 교주가 하늘나라의 감추어진 비밀을 하늘로부터 온 계시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주장할 때 주로 사용한다. 이는 계시라는 말을 교묘히 이용해 교주를 신격화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계시란 이전까지 감춰져 있던 것을 드러내 알게 한다는 의미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하느님께서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알게 하도록 친히 알려주신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계시란 단어는 큰 의미 변화를 겪었다. 과거에는 계시를 주로 신적 진리의 전달로 이해했다. 곧 계시란 인간 스스로 다다를 수 없는 진리에 대해 하느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내용이다. 그러다 보니 계시가 주로 지적으로 동의해야 할 교리 내용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교리 역시 교회가 가르치는대로 의무적으로 동의해야 할 가르침으로 이해되었다. 그로 인해 계시라고 하면 우리의 실생활과 무관히 외부에서 주어진 것, 특히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더라도 일단 의무로 받아들여야 할 교회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계시하신 진리를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굳게 믿는 것”(신덕송)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우리 믿음의 궁극적 대상은 교리 그 자체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믿음이 교리 자체에만 머무를 때 믿음은 발전하지 못하고 하느님과의 깊은 친교로 나아가지 못한다. 대부분 신앙생활에서 어려움과 무미건조함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과거의 사건 속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 지금 우리 안에 살아계시며 우리와 함께 역사를 이루어가는 분이시다. 오늘날 교회는 계시를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알려주시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계시는 역사 안에서, 특히 구약과 신약에 담긴 구원 역사 전체를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을 알게 하시는 행위다.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계시의 정점이며 완성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는 것이 곧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요한 14,9 참조)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교회 안에 현존하시기에, 우리는 말씀과 성사를 포함한 교회의 모든 삶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교회의 삶 전체가 살아계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알게 해주시는 계시의 장(場)이다. 하느님을 아는 것은 인격적 관계를 통해서다.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친구가 되어 우정과 사랑을 발전시키듯, 하느님과도 그러한 관계를 맺으며 그분을 더 잘 알게 된다. 우리가 함께 살며 많은 경험을 나눌수록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것처럼, 하느님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함께 걷고 함께 나누는 시간이 많을수록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그분과 더 깊은 관계 안으로 들어서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걸으며 사랑과 우정의 관계를 맺기 위해 진정한 자유와 해방의 길로 인도하러 오셨지, 자녀가 맹목적으로 교리를 믿고 의무적으로 계명을 지키도록 강요하기 위해 오시지 않으셨다. 이제 각자의 신앙에 대해 물음을 던져보자. 나에게 계시의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나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분이신가, 아니면 저 하늘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무서운 분이신가? 한민택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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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9-04 오전 7:52:01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