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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시(詩)에 매료…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죠” | 2024-08-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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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을 뵌 건 1973년경 추기경님께서 프랑스 떼제공동체를 방문하셨을 때입니다. 성당 뒤에 가만히 앉아계셨는데 사실 처음엔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다음 날 당시 한국 상황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유신 정권에 대한 말씀이었죠.” 한국 문학의 우수성을 해외에 알리는 번역가 안선재 수사(Anthony Graham Teague·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명예교수·떼제공동체)는 김 추기경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기억했다. 안 수사가 홍콩에 있을 때 두 번째 만남이 성사됐는데, 그 계기로 한국에 오게 됐다. 안 수사는 영국에서 중세문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떼제공동체에 들어갔다. 한국 땅을 밟은 건 1980년 5월. 안 수사는 “떼제공동체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땐 자리 잡을 기반이 없어 수입을 얻기 위해 직접 일을 해야 했다”고 전했다. 추천을 받아 프랑스어 강사로 일하다가 1985년에는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어릴 적부터 홀로 조용히 앉아 책 읽기를 즐겼던 그는 한국문학, 특히 한국 시 번역에도 관심을 가졌다. “한국 시에 대해 알고 싶어 동료 교수에게 번역할 만한 시를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예전부터 아는 시인이 있다며 구상(요한 세례자) 시인을 알려주더라고요. 시가 읽기에 쉽고 재밌는데다가 어떤 면에선 굉장히 인간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번역가로서 삶을 시작했다. 구상 시인을 시작으로 서정주, 김광규 등 많은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 영어로 번역됐다. 번역본 대부분은 영국의 한 자그마한 출판사를 통해 출간됐다. 안 수사는 “영국 일간지 한쪽 구석 출판사 광고를 보고 연락해서 한국 시 번역본을 출판하고 싶다고 편지를 썼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첫 출판은 1990년이었다. 최근에는 박노해(가스파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을 번역해 출간했다. 번역 중에서도 왜 시를 특히 좋아했을까. 안 수사는 “시에는 시인의 마음, 시인의 세계관이 간결하고 아름답게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또 불의와 부조리에 저항하던 그들의 비판 어린 시선은 시 한 편 속에도 온전히 담겨 있어 한국 사회 현실을 알 수 있게 해줬다. 그런 시인들의 세계관을 해외에 맛깔나게 전달하는 건 온전히 안 수사의 몫이었다. 물론 시만 번역하는 건 아니다. 안 수사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서한집 번역을 하기도 했고, 지금은 「한국천주교회사」를 영어로 새롭게 번역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코리아타임즈 번역상과 대산번역상 등을, 영국에선 대영 제국 훈장까지 받았다. 또 최근 제28회 만해대상에선 문예대상을 수상했다. 안 수사는 “상을 받은 건 당연히 기쁘지만, 내가 아니라 직접 쓴 원 작가들이 받아야 할 상이다”라며 웃었다. 이어 “상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하고 있는 번역작업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는 번역하는 일이 정말 좋습니다. 조용한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훌륭한 작품을 번역할 때는 정말 행복하죠. 그러기에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모든 기억을 소중히 여기며 번역가로서 기회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형준 기자 june@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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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8-28 오후 2:32:16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