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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양단철 작가 2024-08-28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미술가


어릴적 그림을 잘 그린다는 생각은 못 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림을 그려 내는 숙제가 있었는데, 제 그림이 교실 복도에 걸렸어요. 신기했죠.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건 그때 알았어요. 하지만 집안 형편이 좋았던 것도 아니어서 계속 그림 공부를 하지는 못했어요. 고등학교 때에는 서예반에 들어가 서예를 좀 했고요.


당시에는 민중 미술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있었어요. 미술은 전문가들만 행하고 누려서는 안 되고 대중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식이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는데, 그림을 그리는 게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될지를 생각했죠. 빵을 그려봐야 먹지도 못하잖아요.


그러다가 3개월 정도 여행을 다녔는데, 마이산에서 돌탑을 봤어요. 돌탑 설명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굶주리는 상황을 보고 누군가 돌탑을 쌓았다고 적혀 있었어요. 돌탑을 쌓는 것과 사람이 굶어 죽는 것은 상관없잖아요? 그런데 돌탑을 쌓은 분은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애정으로 돌탑을 쌓은 거였어요. 그걸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일도 사람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미술을 시작하게 됐어요.



스테인드글라스에 눈뜨다


그렇게 미술대학에 진학해 졸업하고 난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국에서는 제 작품 활동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어요. 프랑스 파리에서는 특정 학교에 다니기 보다는 프랑스 작가협회 회원으로 가입해 제게 맞는 분야를 찾는 시간을 보냈어요. 처음에는 중세 미술에 빠져 들었어요. 어두컴컴한 바탕에 빛을 통해 조명하는 수많은 그림들을 보면서 너무 좋았어요. 7~8개월을 퐁피두센터에 가서 중세 그림들을 공부했죠.


그러다가 한 선배의 권유로 성당에 가게 됐어요. 파리에 많은 성당이 있었지만 인식하지 못했어요. 가톨릭교회라는 것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선배가 ‘한번 가보자. 가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 돼’라고 해서 따라갔죠. 그런데 당시 한국에서 유학 오신 신부님이었는데, 신부님 강론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 그날이 주님 부활 대축일이었는데, 다음 주 바로 예비신자 교리에 등록했고, ‘하상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어요.


성당에 다니다 보니 이콘이 보이더라고요. 미술을 전공했어도 이콘이라는 게 있는지 몰랐어요. 이콘을 배우고 싶어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파리 외곽의 한 수도원에서 이콘을 가르쳤어요. 예수회의 피에르 이고르 신부님이라고 이콘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분에게서 이콘을 배웠어요. 수도원에서 먹고 자면서 이콘을 배우는데, 뭔진 잘 모르겠지만 그냥 좋았어요.



세례받고 한 2년쯤 지났을 때였어요.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샤르트르에 있는 국제 스테인드글라스 센터에 찾아가 공부했어요. 정말 하루 24시간을 몰입하다시피 했어요. 하지만 그곳 장인들은 기술을 가르쳐 주려 하지 않았어요. 함께 작업하면서, 거의 독학으로 스테인드글라스 기술을 익혔어요. 나중에 도미니코 수도회의 김인중(베드로) 신부님도 그곳으로 스테인드글라스를 배우러 오시더라고요. 지금은 세계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가가 되셨죠.



IMF 이후 프랑스에서 작업을 더 이어가기가 여의찮아 귀국하게 됐어요. 귀국 후 제가 스테인드글라스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 작품 의뢰가 들어왔어요. 당시 우리나라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한국 스테인드글라스라는 곳에서 거의 다 했어요. 어느 수녀원의 조그만 경당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의뢰가 들어왔는데, 한국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작업을 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의 현실을 봤죠.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곳이라는 데서 모자이크식으로 대충 유리를 조합해 납땜으로 붙이는 수준이었죠.


우리나라에서 하지 않는 나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서울대교구 성북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하게 됐어요. 가톨릭여성연합회 오덕주(데레사) 회장이 의뢰했죠.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들의 이름으로 봉헌하고 싶다면서요. 오 회장님이 그렇게 부자인줄 알았으면 작품비를 많이 받을 걸 그랬어요.(웃음) 이후 서울대교구 행당동성당, 수원교구 판교 성 프란치스코 성당(현 동판교성당)과 오산성당, 청주교구 배티성지, 광주대교구 영광순교자기념성당 등에 작품을 봉헌했어요.


스테인드글라스는 가톨릭교회의 상징


저는 가톨릭교회의 상징은 스테인드글라스라고 생각해요. 진짜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잖아요. 이 스테인드글라스가 주는 영성을 교회가 귀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성당을 지을 때 스테인드글라스에 신경을 많이 쓰면 좋겠어요. 절에서 단청을 칠할 때 대충대충 하지 않듯이요. 장인을 불러 정성을 들여 칠하잖아요. 저는 교회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만들려고 항상 묵상하며 애쓰고 있어요.


여전히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만드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처음 미술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죠. 작가로서 스스로의 만족뿐만 아니라 제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는 거죠.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고, 신앙심을 깊게 할 수 있다면 더 좋고요. 40여 년 작품 활동을 하면서 과연 그런 역할을 했는지 되물어요.



◆ 양단철(하상 바오로) 작가는
1959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1988년 동국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1998년까지 이콘과 스테인드글라스를 공부하며 프랑스작가협회 회원으로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인천가톨릭대 객원교수, 수원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서울대교구 성북동성당과 행당동성당, 수원교구 동판교성당 등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봉헌했으며, 전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와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의 문장을 디자인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8-28 오전 10:12:09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