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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신부의 사제의 눈] 스님의 Ave Maria 2024-08-28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과 법정 스님의 관계는 특별했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 개원 법회에 김 추기경님을 모셨고, 김 추기경님은 명동대성당에 법정 스님을 모시고 강연을 들었다. 길상사는 서울대교구 성가정입양원을 돕는 음악회도 열었다. 수녀님들과 함께 음악회에 참여하신 김 추기경님은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은덕이 가득하시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절은 시주와 연등값 일부를 병원에 기부했다. 김 추기경님은 법정 스님이 지으신 책 ‘무소유’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한국이라는 빈 들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하신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강원용 목사님을 김 추기경님은 “큰 어른”이라고 불렀다. 강 목사님은 1965년 설립한 크리스천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천주교·개신교·불교·원불교·천도교·유교 등 6대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대화모임’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타종교인을 ‘짐승’처럼 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꾸준히 이어진 ‘대화모임’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다종교 평화 사회가 되는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 목사님이 하느님 품으로 돌아갈 때가 되자 만난 이는 김 추기경님이었다. 짧은 침묵기도 후 김 추기경님은 강 목사님의 귀에 대고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세요. 하느님께 다 맡기시고 편안히 가세요. 이렇게 한마디 대화도 못 나누고 보내드리게 되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강 목사님 장례 예배에서 김 추기경님은 조사(弔辭)를 읽었다. 김 추기경님과 법정 스님과 강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사람들은 그분들을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고 불렀다.

그 후에도 이 땅의 종교화합과 대화는 계속되었다. 2012년 5월에 명동대성당에서 소프라노 정율 스님이 노래했다. 5월은 천주교에서는 성모 성월이고, 불교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이 있는 달이다. 노래 제목은 ‘Ave maria’와 찬불가 ‘향심’. 교중 미사 특송으로 불렀다. 명동대성당에서 스님이 노래한 건 처음이었다. 신자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로 환호했다. 이튿날 명동대성당 풍물패가 관악구 남현동 원각사를 방문했다. 그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는데 풍물패는 사물놀이를 연주했다. 풍물패의 가락을 들은 불자들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얼마 전에는 방송에서 만난 천주교 신부·불교 스님·개신교 목사·원불교 교무가 중창단을 만들었다. 각 종교의 성직자가 모여 만든 중창단을 사람들은 세계 최초라고 했다. 중창단은 시작할 때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꿈이었다. 지난 8월 뉴욕에서 평화와 화합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와 토크 콘서트가 열렸는데 중창단이 참여했다. 중창단은 미국에 있는 원불교 선원에도 가고 불교 보리사에도 갔다. 한인성당 청년 미사에도 갔다. 종교는 다르지만, 함께 노래 부르고 서로 대화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평화로웠을 것이다.

한국은 대표적인 다종교사회다. 천주교·개신교·불교·원불교에 민족종교까지. 커다란 ‘종교박물관’이다. 이렇게 다양한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종교화합은 세계적이다. 지구촌 한켠에선 순교의 이름으로 다른 종교에 맞서 저주하며 전쟁까지 벌이는데 이 땅 위의 종교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화합하고 있다.

이는 이웃 종교인들의 개인적 신앙생활과 그들의 종교가 지닌 긍정적 가치를 서로가 인정하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각자 종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이 땅에서 실천해야 할 담론은 공유하고 협력했다. 사회정의, 남북 평화 실현, 윤리와 도덕성 증진 같은 거 말이다. 2027 세계청년대회가 세계적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열린다. 그때 한국을 찾는 모든 이들이 참된 평화가 무엇인지 이 땅 위의 종교화합을 보며 발견하기를 기도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8-28 오전 10:12:09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