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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형제들이 창조 신비 새기며 함께 기도 2024-08-28


전 세계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돼 ‘공동의 집’ 지구를 돌보는 창조 축제가 시작됐다. 매년 9월 1일부터 10월 4일까지 5주간 이어지는 ‘창조 시기’다. 주님 성탄과 부활 시기가 육화와 구원의 위대한 신비를 기념하듯, 창조 시기는 우주 첫 사건인 ‘창조’의 위대한 신비를 기념하는 절기다. 그리스도인은 이 기간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기도하고 행동한다.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다지면서 ‘생태적 회개’로 피조물과 화해를 이루고자 노력한다.

창조 시기는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여러 교파(성공회·루터교회·감리교회·개혁교회 등)가 함께 기린다. 이들이 함께 구성한 에큐메니컬(교회 일치) 운영위원회는 매년 회의를 거쳐 시의적절한 주제와 상징·기도문을 제안한다. 올해 주제는 ‘피조물(창조 세계)과 함께 희망하고 행동하기’. 상징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8장 19-25절에서 영감을 얻은 ‘희망의 첫 열매’다. 이는 창조 세계가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닌, 동료 피조물로서 서로 관계 맺고 협력해야 하는 대상임을 일깨운다. 동시에 우리가 피조물과 함께 일할 때만이 ‘희망의 첫 열매’인 성령을 맺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동방과 서방 교회 기념일이 시작과 끝

‘갈라진 형제들’을 하나로 모으는 창조 시기. 그 시작과 끝은 각각 동방과 서방 교회에서 유래했다.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9월 1일)은 정교회가 처음 정했다. 35년 전인 1989년, 디미트리오스 1세 전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는 회칙을 발표해 “9월 1일 피조물을 위해 기도하자”고 제안했다. 9월 1일은 정교회 전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다. 동방 교회 전통에서 이날을 창조 첫날(창세 1,1-5)로 여기기 때문이다.

정교회 노력에 호응해 서방에서도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기 시작했다. 2007년 9월 4~9일 루마니아 시비우에서 열린 제3차 유럽 교회 일치 총회는 이날부터 10월 4일까지를 하느님 창조를 기억하는 시간, ‘창조 시간(Time for Creation)’으로 삼자고 제안했다. 이듬해부터 정교회와 개신교가 소속된 ‘세계교회협의회(WCC)’는 기도와 행동으로 창조 시간을 지키도록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초청했다.

왜 10월 4일이었을까. 서방 교회에서 두루 공경받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이라서다. 피조물 찬가인 시 ‘태양의 노래’로 유명한 프란치스코(1181~1226) 성인은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라 부르며 사랑으로 대했다. 작은 새들에게 설교하고, 식인 늑대를 감화해 순한 양처럼 만든 일화가 널리 전한다. 공식적으로 성 프란치스코는 생태학자, 즉 생태 분야에서 연구하고 활동하는 모든 이의 수호성인이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9년 11월 29일 교서 「INTER SANCTOS」(성인 가운데)를 발표해 이같이 선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시대, 가톨릭교회도 창조 시기에 동참

2015년 마침내 가톨릭교회도 창조 시기 행렬에 합류했다. 사상 최초로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정한 목자의 결정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8월 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서한을 통해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정한다”고 발표했다. 교황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인류가 겪고 있는 생태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기여하고자 한다”며 “정교회와 같은 날에 지내는 이 기도의 날은 우리가 형제들과 점점 일치되어 감을 목격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그해 5월 24일 인준하고 6월 18일 발표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도 정교회와의 연대를 표명했다. 7~9항에 바르톨로메오 1세 세계 총대주교의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를 인용한 것이다. 바르톨로메오 1세는 1991년 착좌 때부터 줄곧 담화를 내며 생태환경 보호를 촉구해 ‘녹색 총대주교’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듬해인 2016년부터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담화를 발표했다. 동시에 가톨릭교회도 이날부터 10월 4일까지 창조 시간으로 지내기 시작했다. 가톨릭교회의 동참은 ‘창조 시기(Season of Creation)’로 바꿔 부르는 계기가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가운데)이 2023년 9월 30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회 일치 밤샘 기도를 마친 뒤, 각 교파 지도자들과 성 다미아노 십자가 복제본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루터교세계연맹 사무총장 안네 부르하르트 목사·저스틴 웰비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바르톨로메오 1세 정교회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이냐시오 아프렘 2세 시리아 정교회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OSV



가톨릭·정교회·성공회, 공동의 집 위해 한목소리 내다

공동의 집 지구를 지키기 위한 교회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교황은 2017년 바르톨로메오 1세 총대주교와 처음으로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공동담화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두 지도자는 “우리는 사회적·경제적 그리고 정치적·문화적 임무를 맡고 있는 이들에게 책임감을 가지고 지구의 울부짖음을 듣고, 소외된 이들의 요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무엇보다 상처받은 피조물의 치유를 위해 수많은 사람의 간청에 응답하고 세계적 합의를 지지할 것을 긴급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이 지구촌을 강타한 2021년 교황은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를 앞두고 또 한 번 공동 담화를 발표했다. 이번엔 3명의 지도자가 이름을 올렸다. 바르톨로메오 1세 세계 총대주교와 세계 성공회 공동체를 이끄는 저스틴 웰비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였다. 가톨릭과 정교회·성공회. 길게는 1000년, 짧게는 500년 동안 갈라진 형제 교회가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처음으로 한목소리를 낸 역사적 장면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저희 세 사람은 환경 지속 가능성의 시급함, 그 문제가 가난의 굴레에 미치는 영향, 세계적 협력의 중요성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우리 공동체들을 대표하여 모든 그리스도인, 모든 믿는 이와 선의를 지닌 모든 이의 마음과 정신에 진심으로 함께 호소합니다. 우리 지구와 모든 이를 위한 미래를 결정하고자 글래스고에 모일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가 누구든 그리고 어디에 있든, 우리는 모두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라는 전례 없는 위협에 공동대응하는 데 한몫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피조물을 돌보는 것은 헌신적인 응답을 요구하는 영적인 임무입니다. 지금은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우리 자녀들의 미래와 우리 공동의 집의 미래가 지금 이 순간에 달려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노력

교황과 보편 교회의 노력에 발맞춰 한국 교회도 2016년부터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장 명의로 담화를 발표했다. 아울러 2020년부터 창조 시기를 지낸다고 발표했다. 이 해는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이자 ‘지구를 위한 희년’이었다. 아울러 한국 주교단은 추계 정기총회를 마치며 특별 사목 교서 ‘울부짖는 우리 어머니 지구 앞에서’도 발표했다. 주교단은 “참회하는 마음으로 생태적 회개를 실천하며 복음을 선포할 것을 다짐한다”며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생태적 회개가 ‘환경보호’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교회의 모든 사목 분야에서 사랑의 복음을 실천하는 적극적 신앙 행위로 승화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24-08-28 오전 8:12:08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