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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속에 영영 묻힐 뻔한 성화…반세기만에 다시 세상으로 2024-08-27

 

오토바이에 페인트를 싣고 외진 공소를 다니며 벽화를 그렸던 프랑스인 신부. 한국말이 능숙하지 않았던 이 프랑스인 신부는 “한국 신자들에게 한국말로 강론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1960년대 한국에서 선교하며 성당 벽화를 그렸던 앙드레 부통 신부((Andre Bouton·1914~1980, 성 베네딕도회) 이야기다. 
60여 년이 지난 2024년, 그의 그림들은 지워지거나 색이 바랬다. 하지만 한국교회에 대한 외국인 사제의 애정이 깃든 흔적을 찾기 위한 사목자와 교회미술전문가의 노력으로 그림들이 다시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 여정을 함께한 이들은 “부통 신부님의 작품이 복원된 과정은 기적과 같다”고 말했다.

 

 

■ 앙드레 부통 신부, 56년 만에 한국 신자들과 다시 만나다

 

 

1960년대 지어진 충남 예산군 삽교성당은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지만, 최근 제대 뒤 벽면의 색이 바래 도색 공사를 결정했다. 공사를 앞두고 점검을 하던 중 벽의 흰색 마감재가 떨어져 나갔고 그 뒤로 화사한 색의 그림이 드러났다. 

 

 

본당 주임 최일현(루카) 신부는 예사로운 그림이 아니라고 판단, 공사를 멈추고 예산군 문화재과에 문의했다. 예산군을 통해 소식을 들은 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 미술학과 정수경(가타리나) 교수는 그길로 성당으로 내려왔다. 

 

 

2006년부터 앙드레 부통 신부의 작품을 연구해 온 그는 단번에 부통 신부의 그림임을 알아챘다. 앙드레 부통 신부의 그림이 56년 만에 다시 세상에 나온 순간이다.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벽화 복원이고, 종교미술을 다뤄야 하기에 복원 업체를 선정하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김주삼(루치아노) 씨가 소장으로 있는 art C&R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가 제단화 복원을 맡았다.

 

 

그림을 덮고 있던 흰색 페인트를 정성스럽게 거둬 내자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났다. 십자가 위에 그려진 성부는 삼각형과 원형의 후광을 지닌 채 예수님을 품고 있다. 예수님 왼쪽의 요한 사도는 성 베네딕도 십자가가 그려진 제의 차림에 성체와 성혈을 받들고 있는 한국인 사제의 모습으로 표현됐다. 


 

 

그 옆에는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고 있는 론지노와 슬픔에 잠긴 성모 마리아,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있다. 예수님이 검은 머리카락과 가늘고 긴 눈을 가진 동양인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도 벽화의 특징이다.

 

 

가로 3.3m, 세로 4.7m 규모의 이 작품은 부통 신부가 1960년대에 그린 작품 중 제단화 형식의 단일작품으로는 최대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수경 교수는 “다행히 벽화가 페인트 마감재를 하기 전 채우는 충전재인 ‘퍼티’로만 덮여 있어 쉽게 닦을 수 있었다”라며 “그 덕분에 원래의 색과 디자인을 그대로 살려 원본에 가깝게 복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또한 삽교성당 제단화가 문화재로서 의미를 갖는 이유는 작가 서명과 그린 날짜가 명확히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복원 과정에서 명확히 드러난 부통 신부의 두 가지 서명 ‘FRAB’, ‘부신부’와 제작 날짜 ‘11.11.68’ 역시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며 작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요소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 붓으로 선교했던 앙드레 부통 신부

 

 

“신부님은 춤을 추듯 빠르게 그림을 그리시고는 그림값 대신 밥 한 끼 먹고 가겠다고 하셨죠”

 

 

앙드레 부통 신부를 기억하는 신자들은 그가 “재미있고 따뜻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프랑스 위스크에 있는 성 베네딕도회 생폴수도원에 입회해 1940년 사제품을 받은 앙드레 부통 신부는 동아시아 지역의 선교를 담당하고 있던 올라프 그라프 신부와의 인연으로 1964년부터 10여 년간 한국에 머물렀다.

 

 

 그의 한국 신자에 대한 애정은 그림에도 드러난다. 검은 머리카락에 이목구비가 두드러지지 않은 한국인과 닮은 모습의 예수님, 한국 전통 복식을 결합한 표현이 그의 그림에 여러 번 표현된다.

 

 

초기 작품 중에는 부처 그림인 탱화를 연상시키는 것도 있다. 한국인 대부분이 불교 신자임을 고려해 부처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림으로 표현한 것. 

 

 

불교 신자들이 성화 앞에서 큰절을 올리는 것을 본 부통 신부는 “그림은 하느님과 인간이 상봉하는 매개체가 돼야 진정한 종교적 의미를 가지게 되며 말로써 해설할 수 없는 복음을 육감적으로 느끼게 하는 힘이 있음을 알게 된다”고 전했다.

 

 

부통 신부는 자신의 그림을 보는 이들이 그림 자체에 집착하지 말고 그림을 초월해 그리스도와 직접 대화할 수 있길 바랐다. 한국말이 서툴렀던 그는 붓으로 복음을 전하며 선교했던 것이다. 

 

 

프랑스 야수주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부통 신부의 작품은 붓 터치가 거칠고 고유색에서 탈피해 자유로운 색채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윤곽선을 밝은색으로 강조, 대상의 색을 강렬하게 보이는 효과와 함께 전체적으로 화면에 빛을 더했다.

 

 

정수경 교수는 “부통 신부님 작품에서 드러나는 원색 중심의 강렬한 색채는 사찰 건축의 단청이나 탱화, 한복의 대담한 색 조화에 영향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며 “비록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했지만 작품의 주제를 한글과 한자로 적어 넣음으로써 한국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아울러 한국인들과 보다 가깝게 소통하고자 노력했던 신부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여 년간 한국에서 선교했던 부통 신부는 100여 점의 벽화를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지방 공소를 중심으로 20여 점이 남아 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가톨릭신문 2024-08-27 오전 11:32:0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