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본당 신부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연히 한 자매님과 동석했다. 나이 57세. 매일 성체조배와 묵주기도 안에서 깊은 영적 체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신부님의 충격 폭로! 원래는 이런 겸손한 모습이 아니었다고 한다. 물만 봐도 손가락으로 튕길 정도로 콧대가 높고, 공주병이 심했다고 한다. 자매님도 동의했다. 고백이 이어졌다.
“20대의 저는 도끼병 중증 환자였습니다. 매사가 ‘저 남자가 날 또 찍었나봐’ 였어요. 실제로 주위에 결혼하자고 따라다니는 남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자매님은 선택권이 많았다. 많은 남자 중에 한 명 고르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신중했는지…. 고르고 골라서 결혼한 남편은 돈도 많이 벌지 못했고, 속도 어지간히 썩였다. 반면 걷어찬 남자들은 훗날 모두 돈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혼하면 된장찌개 하나만 밥상에 올려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지금 남편과 결혼한 것을 후회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결혼 이후에도 좀처럼 차도를 보이지 않던 자매님의 공주병은 10년 전 예수님이라는 이름의 용한 의사를 만나면서 치유된다. 치유에 사용된 알약은 ‘감사’였다. “남편이 건강한 모습으로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행복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을 알게 되면서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됐습니다.”
많은 이들이 평범하지 않은, 자극적인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콜라와 사이다만 매일 마시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물은 매일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는 회도 매일 먹으면 질리지만 밥은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콜라와 사이다, 회에 감사할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밋밋한 물과 밥에게 감사해야하지 않을까.
예수님은 지금도 든든한 남편처럼 밋밋하게 우리 옆에 계신다. 예수님은 상처 입은 의사다. 아파본 의사다. 아파보았기에 우리의 두려움과 아픔을 잘 알고 계신다. 그 용한 의사가 말씀하신다.
“걱정하지 마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2)
혹시 우리는 예수님의 청혼을 받고도 공주병 왕자병 때문에 튕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이 공주병 왕자병을 치유할 기회다. 마귀는 “하지 마라”고 하지 않는다. “다음에 하라”고 한다. 당장 종합 건강 검진을 받아야겠다. 건강 검진을 마치면 많이 아파본 의사, 예수님께서 처방전을 주실 것이다. 처방전에 적힌 약의 이름은 아마도 ‘감사’일 것이다.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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