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간 가난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저자 강지나 작가. 교사로서 대물림되는 빈곤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했던 결심이 현재 사회에 다양한 목소리로 공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난, 개인의 문제 넘어 집단의 문제
교사로서 아무 역할 할 수 없음에
퇴직 고민하다 학교 사회복지 공부
‘빈곤 대물림’ 박사논문 준비하며
10여 년간 아이들 8명 인생 동행
수많은 독자 응원 편지 보내와
영혼의 고갈 채워주는 게 교회 역할
피정이나 캠프, 청소년에 도움 될 것
강지나(베로니카) 작가는 10여 년간 주변 가난한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기록해 지난해 책으로 출간했다. 지금도 사회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의 저자다. 그는 25년 경력의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이자 청소년 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여러 편의 관련 논문을 쓴 연구자이기도 하다.
교단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그의 눈에 더 힘들고 어렵게 사는 아이들이 깊이 들어왔던 걸까. 초임교사 시절, 대물림되는 빈곤의 고리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했던 결심이 그를 이 시간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이 오래된 주제는 다시금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목소리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사회는, 어른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난은 무엇인가. 강 작가가 오랜 시간 고민하고 던진 질문을 따라가 봤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 등장하는 17살 소희는 영구임대아파트에서 가족과 살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전형적인 도시빈민이었다. 외할머니는 술 먹고 행패를 부리기도 했는데, 어머니 목에 칼을 들이대고 죽인다고 위협했던 사건을 목격한 적도 있다. 외할머니는 생계를 위해 급기야는 큰딸인 소희 어머니를 어린 나이에 다른 집 식모로 보내버렸다. 지금도 어머니는 글을 읽지 못한다.
소희 어머니는 우울증을 오랫동안 앓아왔다. 아버지는 소희가 다섯 살 때 이혼한 후 집을 나갔다. 초등학생 때 새 아버지가 생겼지만, 조현병이 있었고 술을 자주 마셨다. 툭 하면 어머니에게 욕하며 때리곤 했다. 두 살 터울 오빠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게임에 중독돼 고등학교도 다 못 마쳤다. 누구도 소희가 대화를 나누거나 마음을 의지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했다.
24살 소희는 겉으로는 여느 대학생과 같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관계 맺기가 어려웠고, 학교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28살이 된 소희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도 취득했다. 다만 자기가 현장에서 계속 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해결되지 않는 외로움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포근히 안아줄 관계에 대한 갈망이었다. 누구도 밑바닥까지 소희를 이해하고 같은 편이 돼 줄 사람은 없어 보였다.
빈곤층 청소년들과 10년간 동행한 작가
강 작가는 교사가 되기 전까진 가난을 옷이 부족하거나 학원을 못 다니는 정도의 피상적 개념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2000년 경기도 외곽 소도시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중 성장하고 싶은 욕구를 망가뜨리는 문제의 본질이 가난임을 알게 됐다. 공공성이 부족하고 희망을 발견하기 힘든 지역의 사회 문화 특성상 학생들도 무기력하고 동기가 잘 생기지 않았다. 즉 가난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집단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강 작가는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자극을 줘서 가르침을 끌어내는 게 쉽지 않았다”며 “동기 유발이 전혀 되지 않는 분위기에 교사로서 절망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큰 위험에 처한 아이들도 있었다. “할머니가 자기 아들이 돈을 안 갚는다는 이유로 손자를 학교에 보내지 않았어요. ‘밥은 제대로 줄까? 신체나 정서적 학대는 없었을까?’ 생각했죠. 가난이라는 게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구나. 영혼을 갉아먹고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사로서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었어요.”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고 함께한 강 작가는 교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차에 친구에게서 학교 사회복지라는 제도에 대해 들었다. 빈곤층 아이들을 직접 도와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강 작가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공부를 병행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학교 사회복지는 제도적으로 잘 정착되지 못했다. 그래도 공부는 꾸준히 이어갔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빈곤 대물림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했다. 2012년 아이들과 첫 인터뷰를 시작했고, 책 출판까지 이어지면서 2022년 마지막 인터뷰까지 10여 년간 8명의 아이들 인생을 동행했다.
빈곤의 고리를 끊기 위해
“빈곤은 단순히 재화의 부족이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역량의 박탈입니다.”
강 작가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티아 센 교수의 말을 빌려 이같이 말했다. 곧 빈곤의 대물림은 박탈의 경험이 대를 이어 축적되고 불평등한 사회구조로 고착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걸 경제적인 수치로 계산하려고만 합니다. 사회 안에서 어떻게 자기 역할을 하고 행복하게 살 것인지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아요. 돈 얘기만 하고 끝내버리죠. 누구나 자기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안 돼 있는 상황이 빈곤입니다. 자기 역량을 잘 발휘하기 위해선 건강해야 하고, 안전해야 하고, 교육도 충분히 받아야 하죠. 결국 사회가 안전망이 돼줘야 합니다.”
교사로서의 정체성도 되짚었다. 그는 “배고픈 아이에겐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한들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며 “배고픔에는 물리적 배고픔뿐 아니라 정신적 배고픔, 영혼의 고갈도 포함된다”고 했다.
“입시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안전한지, 자아 정체감을 잘 형성하고 있는지 두루 살펴봐야 합니다. 생각하거나 성찰하는 시간, 영혼을 채우는 시간도 중요하죠. 저는 청소년기에 성당에서 그 부분을 많이 채웠던 것 같습니다. 피정이나 캠프가 도움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회가 정신적 빈곤과 영혼의 고갈을 채워주는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책표지.
예상 뒤엎고 대중적 반향 일으켜
강 작가는 지금까지 나온 인세 모두를 빈곤층 청소년을 위한 곳에 기부했다. 그가 책을 낸 이유도 10년간 인터뷰를 해준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강 작가는 “빈곤은 오래된 주제이기도 하고,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예상을 뒤엎고 반응은 뜨거웠다. 교사와 사회복지사, 어르신 등 수많은 독자가 편지를 보내왔다. “알고 있었지만, 사회적 이슈로 끄집어내 줘서 고맙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특히 빈곤을 겪었던 청년들로부터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여전히 힘들다고,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입니다.”
강 작가는 “가난이라는 주제에 이처럼 관심이 많은 게 단순한 호기심은 아닌 것 같다”며 “발견 못 했을 뿐이지, 다들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사회에 필요한 문제를 제기한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 속 주인공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사실 정말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하는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제 자리에서 하던 대로 아이들과 또 열심히 살아갈 거고요.”
박민규 기자 mk@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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