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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보내주십시오] 파리 외방 전교회 임경명 신부(하) | 2024-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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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까지만 해도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서울 마포구 난지도. 임경명 신부(Emmanuel Kermoal·파리 외방 전교회)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고 싶어 망설임 없이 난지도와 그 바로 옆 동네인 수색 플라스틱 공장까지 노동자들을 찾아 함께한다. 난지도와 수색, 그리고 1974년 첫발을 내디딘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임 신부의 감회를 살펴본다. 지옥 한가운데 있던 천국 마을 1993년 1월, 임경명 신부는 예수의 작은 자매회 추천으로 난지도에 있는 마을을 찾아갔다. 난지도는 여의도처럼 한강 속의 섬이다. 난지도에는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서울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쓰레기가 매립됐다. 난지도는 달동네 재개발이 한창이던 그 시절, 길거리로 쫓겨난 세입자들 700여 명이 판잣집 마을을 이루고 살던 곳이기도 했다. 그들은 폐기물을 분리하거나 재활용품을 수거해 생계를 이어나갔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꼬박 12시간을 난지도 현장에서 쓰레기 분리 작업을 했어요.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 텔레비전이 모두 철이라서 분리해 팔기 위해서였죠. 일이 아주 힘들었어요.”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운데다 악취까지 심했던 난지도 쓰레기 더미에서의 노동이 지옥 같았다고 회상한 임 신부는 “하지만 난지도 마을 사람들은 하늘나라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임 신부는 난지도에서 폐기물 분리 작업을 2년 하고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이 94년 문을 닫자, 난지도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함께 바로 옆 수색의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으로 가 3년 일했다. 그가 난지도와 수색으로 향한 건 그곳이 가난한 사람이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라는 것, 그뿐이었다. “어떤 일을 하든 항상 봉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면 돼요. 예수님께서도 다른 이의 이웃이 되라고 하셨잖아요.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이 되는 거죠.” 쓰레기 더미 안에서 신앙의 꽃을 피우다 “처음에는 낯선, 게다가 외국인인 나에게 왜 왔냐고 묻던 사람들이 6개월 후엔 나를 ‘우리 신부님’이라고 불렀어요.” 난지도에 처음 갔을 땐 임 신부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시선도 많았다. 하지만 어떠한 종교인도 찾지 않았던 난지도, 그곳에 가톨릭 신부는 찾아왔다며 다른 종교를 가졌던 그들과 임 신부는 이내 친구가 됐다. 한번은 난지도를 찾은 수리 기사 중 한 명이 “나는 밤 11시까지 일하느라 고해성사를 볼 수 없었는데 이곳에 신부님이 계시다니 고해성사를 보고 싶다”고 말했고, 이에 임 신부는 폐냉장고 뒤에서 무릎 꿇은 기사에게 고해성사를 주기도 했다. 그는 이내 신자인 친구 10명을 데려와 임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도록 도왔다고. 임 신부가 난지도와 수색에 갈 땐 별도의 상부 허락 없이 갔다. 그런데 고(故) 김수환 추기경(스테파노·1922~2009)은 임 신부의 소임을 후에 알게 된 뒤 그를 서울대교구청으로 불러 다른 신부들에게 직접 난지도에서의 사목을 소개했다. 혹시라도 있을 반대 여론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게 제 소임을 당신이 인정했음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시는 추기경님의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삭막한 첫인상과 달리 사람 냄새나는 한국 임 신부는 1974년 29세의 나이로 한국에 왔다. 가뜩이나 남북으로 나뉜 나라인데다 박정희 군사독재까지 더해져 사회 분위기는 더욱 냉랭했다.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이 있은 보름 후에 입국한 그의 눈에는 군인으로 가득한 공항의 삭막하고 경직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의 통금으로 이동의 자유까지 빼앗겼던 기억도 난다. 사회 분위기와 달리 일반 서민들은 소박하고 정이 넘쳤다. 그는 한국 사람이 얼마나 착한지 알게 된 계기를 이야기했다. 임 신부는 “부인이 신자인 신혼부부의 한옥집에 얹혀산 적이 있었는데, 밥상에 늘 김치찌개, 미역국 등을 푸짐하게 차려주곤 했죠”라고 전했다. 이어서 “그 뒤 프랑스 문화관에서 만난 이화여대생이 자기 집에 빈방이 있다며 공짜로 하숙을 해줬어요. 아침마다 부처상에 절을 100번 하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는데도 말이죠”라며 덕분에 한국인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뿌리 깊은 유교 사상과 상명하복이 강조된 군사정권 시대를 경험한 임 신부는 “우리는 모두 같은 형제자매들이자 평등한 공동체”라고 말했다. 아울러 “책임자는 윗사람이 아니에요. 동반자로서 함께 있어 주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해요”라고 당부한 그는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고 사랑을 나눈 예수님을 닮자고 전했다. “예수님은 특히 죄인들을 만날 때 관계를 만드셨어요. 관계가 없으면, 사랑 없으면 우리는 못 살아요. 사랑을 안 받으면 죽듯이 사랑을 안 주면 우리는 죽을 거예요. 같이 관계를 맺고 함께 한다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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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8-21 오전 9:12:10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