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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한진섭 작가 | 2024-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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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따라 시작한 조각 저와 조각의 만남은 고등학교 시절 미술반 활동에서 시작됐어요. 당시 저는 동양화를 그리고 싶어 미술반에 들어갔어요. 그러다가 1학년 2학기쯤 고(故) 유영교 선생님(라우렌시오·1946~2006)을 처음 만났어요. 그러면서 조각에 매력을 느꼈어요. 선생님께서는 돌 조각을 전문으로 하셨고, 저도 당시만 해도 조각은 돌을 쪼는 일로만 알았죠. 조각을 배우기 위해 유영교 선생님이 다니셨던 홍익대 미술대학에 입학해 조각을 전공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면서 모교였던 명지고에서 미술교사로 3년 정도 근무했죠. 그리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조각을 더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게 됐어요. 그때가 1981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유영교 선생님도 1978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셨죠. 제가 스토커처럼 유영교 선생님을 따라간 거죠. 제가 공부한 이탈리아 카라라는 토스카나 지방의 소도시로, 로마 시대부터 이 지역의 대리석이 사용됐어요. 로마 시대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조각가가 거쳐 간 지역이죠. 고대부터 이어지는 채석 기술과 예술적 전통을 자랑하는 지역에서의 유학생활을 제 조각 인생에 큰 밑바탕이 돼 주었어요. 그리고 이탈리아 유학 중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어요. 그곳에서 세례도 받았고요. 미술사를 공부하던 아내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며 유럽의 성당을 쥐 잡듯이 돌아다녔어요. 아내의 일이 답사하고 작품 보는 것이었는데, 덕분에 저도 유럽의 많은 성미술 작품들을 볼 수 있었어요. 성미술은 독창적이고 기능성 겸비해야 1990년 귀국해 처음에는 경기도 이천에 작업실을 마련했어요. 이후 1994년 지금의 안성 작업장으로 이주했고요. 성 김대건 신부님이 묻혔던 미리내 성지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에요. 수원교구 분당성요한성당을 짓고 있을 때였는데, 저에게 성미술 감독을 맡기지 뭐예요. 국내 굴지의 작가들을 섭외하는 일이었지만, 성미술 작업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었기에 성미술에 대해 공부를 해야 했어요. 당시 안동교구 정양모(바오로) 신부님을 주축으로 1년에 한 번씩 성지를 순례하며 유럽의 미술품을 보러 다니는 모임이 있었는데 성미술을 더 배우기 위해 아내와 저도 따라다녔어요. 그때 성지 순례에서 원주교구 대화본당 주임 신부님을 만났는데, 그 신부님은 성당을 새로 지으셔야 했어요. 그 신부님이 제게 성당 성미술 작품을 의뢰하셨고, 당시 IMF로 다른 프로젝트가 지연됐을 때라 대화성당 성미술 작업에 적극 나설 수 있었어요. 저는 성미술은 독창적이어야 하고 작품성과 기능성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시대성도 반영해야 하고요. 이런 생각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교회가 2000년 넘게 역사를 이어오고 있으니, 새롭게 무언가 만든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제 식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죠. 작가로서 독창적이면서도 우리 시대상에 맞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하는 성미술 작품이었는데, 다행히 대화성당 작품들을 보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이후로 여러 곳에서 성미술 작품을 의뢰하셨고 나름 열심히 작업에 나섰어요. 성 베드로 대성당 김대건 성인상을 이끈 주님의 섭리 지금 돌이켜보면, 그동안의 저의 삶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김대건 성인상을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주님께서 저를 조각으로 이끄셨고 이탈리아 카라라로 유학을 보내셨으며 김대건 신부님께서 묻히신 미리내 성지 근처에 작업실을 꾸리게 하셨던 거죠. 저는 보통 구체적인 조각상이 아니라 얼굴 형상을 아예 없애거나 단순화시키는 조각상을 만들어 왔어요. 그런데 한번은 수원교구 하우현성당에서 한덕운 복자상을 의뢰했어요. 구체적인 조각상은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서 복자와 그 당시 복식에 관해 공부하고 작품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걸 보시고 대전교구청에서 새 교구청에 세울 김대건 성인상을 의뢰하셨고, 또 수원교구 버드내성당에서도 정하상 성인상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주님께서 이렇게 구체적인 조각상을 만들며 성 베드로 대성당 김대건 성인상을 봉헌할 기회를 마련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성 베드로 대성당에 김대건 성인상을 모신 건 정말 역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지금도 성 베드로 대성당 김대건 성인상을 알리는 일이라면 무조건 나서고 있어요. 성미술이 문화재가 되는 그날까지 1975년 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돌 조각에 나섰으니, 49년째 돌 조각을 하고 있어요. 매일 작업장에 나와 작업을 하고요. 사람들도 잘 안 만나고 거의 작업실에만 있어요. 여기 오면 할 일이 많거든요. 날이 덥든 춥든 제 삶은 거의 매일 똑같아요. 마음도 편하고요. 지금은 서울대교구 항동성당 성미술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여름 안에 끝내려고요. 가을에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순례에 나서려고 해요. 제가 최근에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으로 서원을 했거든요. 우리나라 불교는 역사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불교 문화재가 참 많잖아요? 그런데 아직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의 성미술 작품 문화재는 없어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우리 가톨릭교회에도 성미술 작품 문화재가 많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에 나서고 있어요. 20년 후, 50년 후 그리고 100년 후에도 사랑을 받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 한진섭(요셉) 작가는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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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8-14 오전 8:32:10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