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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통한 고통에 대한 이해 | 2024-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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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자기를 살 기회라고 본 가다머의 관점을 소개했는데, 방주의 창에서 본 오늘 우리 사회는 일정하게 고통을 적대시하는 면이 있다. 그러면 한 그리스도인인 나에게 고통은 무엇인가? 4월 4일 오후 3시경이었다. 전날 오후와 이날 오전에 전주가톨릭사회복지회 ‘무지개가족’에서 강연을 마치고 광주대교구 생태환경위원회에서 여는 생태영성학교 프로그램을 위해 전주터미널에 도착했다. 비가 내려서 조심해서 걸었지만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져서 왼쪽 무릎에 심한 충격이 왔다. 한순간 숨이 흐트러지면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태어난 후 6개월쯤 지났을 때 소아마비가 와서 왼쪽 손으로 스틱을 짚고 다녔는데, 균형이 흐트러지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통증이 심해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다가와서 도와주려 했다. “119를 불러 줄까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시라고 하고는 먼저 무릎 상태를 확인했다. 뼈가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병원이 아니라 광주로 가려 했으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행히 60대 후반쯤 돼 보이는 한 남자분의 도움으로 광주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는 좌석까지 데려다 주고 나서 자기가 메고 온 나의 가방까지 친절하게 챙겨 주고는 내려가셨다. 광주터미널에 도착한 후 가까스로 버스에서 내렸으나 걷지 못하고 서 있는 나를 보고 버스를 운전한 기사가 다가와서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으셨다. 감사로 가득 차서 그의 손을 잡고 택시승강장까지 갔다. 그는 내가 택시를 잘 탈 수 있게 도와주고 자기가 짊어졌던 가방을 넘겨주고는 터미널로 가셨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 연락했더니, 평생교육원에 도착했을 때, 조규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선생님이 휠체어를 갖고 나와서 기다려 주셨다. 전주터미널에서 따뜻하게 염려해 준 사람들의 사랑 앞에서, 특히 손을 잡아 준 분의 도움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고통 속에서도 무척 감사했다. 왼쪽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는 중에도 사는 것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사는 것이 선물이라는 느낌이 온몸을 휘감으면서 감사로 가득 찼다. 가다머는 고통을 이겨냈을 때의 기쁨이 자연이 선물하는 최고 명약이라 했다. 나에게 고통은 무엇보다도 감사를 체험하게 하고, 사는 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계시해 주었다. 그것은 내가 의식하든 않든 인정하든 않든 내가 다른 존재들과 이어져 있다는 것과 그들이 바닥이 돼 주지 않는 한 내가 존립할 수 없다는 것, 그러므로 내가 사는 것이 선물인 것을 계시한다. 이런 의미에서 고통은 이웃의 사랑과 자연 만물을 통해서 일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선물받고 또 그 사랑을 사랑으로 체험하는 은총의 ‘통로’다. 인간은 하나의 바닥 위에서 다른 존재들과 이어져 있다. 다른 존재들이 바닥이 돼 주지 않는 한 누구도 자기로 살거나 존재할 수 없다. 흙, 물, 빛, 바람 같은 물리적 실재든 사람이든 너 없이 나 없다. 고통 속에서 고통을 통해 계시받고 확인받은 단순하고 아름다운 신학적, 영성적 진리다. 이때 넘어져서 겪는 고통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나로 존재하게 하는 지수광풍(地水光風)과 이웃들에 대한 감사를 체험하게 하고 그 감사를 발현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삶은 고해(苦海)이기 전에 은해(恩海)다. 전주터미널에서 넘어진 이 일을 계기로 한 생각이 올라왔다. ‘내가 태어나서 신학을 공부하고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사는 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였구나.’ 하느님 안에서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선물이다. 그분 안에서 그분의 존재들과 더불어 그분의 자녀로 존재하고 숨 쉬고 산다는 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일이다. 나에게 자기의 존재와 사랑을 내어주는 뭇 존재들과 생명들과 사람들에 대한 감사로 내가 그분 앞에서 숨 쉬는 이 여정이 내가 만나는 존재들에게, 할 수 있는 한 기쁘고 온유한, 하느님의 한 작은 선물일 수 있기를 바란다.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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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8-14 오전 8:32:10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