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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묻혀 영영 사라질 뻔한 부통 신부의 벽화 되살려 | 2024-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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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삽교본당 주임 최일현 신부는 지난해 제대 뒤 성당 대벽 칠 공사를 앞두고 점검 중이었다. 무심코 갈라진 벽체를 건드려 보니, 흰색 마감재가 떨어져 나가고 그 밑에서 화사한 빛깔의 물감층이 드러났다. 최 신부는 ‘로마 유학 시절 수없이 보았던 벽화가 설마 우리 본당에 있을까?’ 하는 기대 속에 벽체 일부를 긁어냈다. 그 결과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벅찬 감격과 신기함도 잠시, 신부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벽체를 긁어내는 과정에서 벽화에 상처가 나고, 일부가 적지 않게 파손되었기 때문이다. 일체의 작업을 중단하고 우선 이 벽화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로 했다. 신자들로부터 본당 초창기 사진들을 수배하기 시작했다. 의외로 본당의 어르신 중에 이 벽화를 기억하는 분이 꽤 있었고, 이 벽화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도 다수 수집되었다. 그중 한 신자의 혼인성사 가족사진 배경에 흑백이지만 제작 연도와 작가의 서명도 보였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벽화에 대한 기록은 사라졌다. 따라서 이 즈음이 벽화를 마감재로 덮은 시기라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벽화가 사라지게 된 이유와 과정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성미술 연구자인 인천가톨릭대학교의 정수경 교수와 연결되었고, 마침내 이 벽화의 작가가 프랑스 출신 앙드레 부통(Andre Bouton, 1914~1980) 신부임을 알게 되었다. 부통 신부는 한국에 체류하는 10년 동안 성당과 공소 등지에 수많은 벽화를 남겼는데, 주로 경상도 권역에 있었고 대전교구에는 대흥동성당이 유일했다. 정 교수는 이 벽화가 부통 신부가 남긴 벽화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 주관 하에 복원 계획이 수립되었고, 필자는 이 프로젝트의 복원 실무 책임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본격적인 복원 작업에 앞서 몇 차례의 사전 답사와 마감재 제거를 위한 약품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특히 일부 벽화 조각과 마감재 성분을 삼성미술관 분석실에 의뢰해 물감 성분과 마감재 재료가 아크릴계임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통해 작품의 클리닝 과정에서 사용될 약품을 선별할 수 있었고, 부통 신부가 산업용 아크릴 페인트를 사용했다고 추정할 수 있었다. 비계를 설치하고, 플라스틱 재질의 스크레이퍼나 붓 등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마감재를 제거했다. 잔재물은 물과 흡수성 스펀지를 이용해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균열 부위와 박리가 진행된 물감, 박락된 부분 등을 보존용 접착제를 이용해 보강하였다. 또한 손실된 물감층과 균열 부위는 벽화에 적합한 메움제를 사용하여 메워주고 색 맞춤을 하였다. 복원 작업 후 부통 신부의 벽화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작업자들은 물론 신부님을 비롯해 삽교본당 신자들은 감격하였다. 이 벽화 복원 작업이 개인적으로는 가톨릭 신자로서 미약한 재능이나마 하느님께 돌려드릴 기회였다는 점에서 매우 보람되고 영광된 시간이었다. 특히하마터면 벽에 묻혀 영원히 사라질 뻔한 중요한 성미술 한 점을 살려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주위에 훼손되고 방치된 성미술품을 잘 보존 관리하고, 필요하다면 복원 작업을 통해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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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8-07 오전 10:32:04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