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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을 되갚는 기쁨 | 2024-08-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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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세례받고 하느님한테 원하는 대학가게 해달라고 기도해봐, 들어주실지 아니?”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에게 아주 솔깃한 유혹이었다. 갓 세례를 받으신 엄마가 나를 인도하고자 군침 도는 미끼를 던지셨고 대학입시에 관련된 것이라면 그 무엇도 할 수 있던 열정 시기였기에 나는 덥석 예비자 교리 교육을 신청하게 되었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했던 고3 수험생이었지만 틈틈이 기도문을 외우고 학원시간을 조정해 교육도 받고 한 시간 더 잘 수 있는 황금 같은 주일에도 꼬박꼬박 미사를 드리러 갈 정도로 나의 정성은 대단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마음에 들어 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그 무엇을 못하겠는가.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신문방송학과 수시모집 합격!’ 나에게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찾아왔다. 사실 입시에서는 어떤 대학을 선택해서 지원할지 결정하는 것도 실력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운도 따라야 한다. 비록 나는 성경책 읽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초보 신자였지만 내 실력만으로 고려대학교 입학이 절대 불가능하단 걸 잘 알고 있었기에 체험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나름 굳건했다. 이런 이유로 주일 미사에 빠짐없이 참례해 하느님께 감사 봉헌과 기도를 꾸준히 올리곤 했다. 그런데 이런 기쁨도 잠시였다. 기도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 복잡한 생각들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나는 대학입시를 위해 성당을 나가기 시작했지 진실된 신앙심으로 하느님을 만나러 간 게 아니었는데 왜 하느님을 내 기도를 들어주셨을까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분명 내 검은 속내를 다 읽으셨을 텐데도 말이다. 십자가상을 볼 때마다 내심 찔리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보에 청년 성가대 모집 공고가 올라왔고 엄마는 또다시 나에게 유혹의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너 대학 합격 감사의 의미로 성가대 봉사해 보는 거 어때?” 정말 생각이 없었지만, ‘감사의 의미’라는 단어가 가슴 깊게 파고들었다. “감사한 건 알지. 근데 난 어렸을 때 방송활동을 합창단으로 시작했어서 왠지 성가대도 일로 느껴질 것 같아서 부담되네. 초등부 교사 모집하면 그건 가능하겠다. 아이들 좋아하니까.” 타당한 변명거리를 찾던 중 나온 제법 훌륭한 핑계였다. 처음 대합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내게 주신 큰 은총을 어떻게라도 보답하고 싶단 생각이 가득했는데 막상 봉사로 보답해야 한단 생각을 하니 귀찮기도 하고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잘 피해갔다 생각했는데 바로 다음 주 주보에 ‘초등부 교사 모집’ 공고가 떡 하니 실려 있었다. 나의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누군가 바로 잡아주시려는 듯한 느낌이 ‘팍’ 들었다. 나에게 주신 은총은 내가 절대 받을 수 없는 하느님의 과한 자비였는데 그걸 홀라당 받기만 하고 은근슬쩍 넘기려고 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결국 미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제일 첫 번째로 교사 모집 신청서를 냈고 그 이후로는 내 탈렌트를 원하는 천주교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홍보대사, 청소년 생명사랑 홍보대사, 파티마성모발현 100주년 기념 강연, 주일학교 행사 강연, 고통과 아픔을 기도로 극복한 문화예술인의 이야기를 담은 책 「슈퍼스타」 발간, 서울주보 글, 평화방송 라디오, 그리고 가톨릭 신문까지…. 24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대학 합격 발표 후 그 어떤 고민과 스트레스 없이 세상이 마냥 아름다워 보이고 마냥 감사했던 그때를…. 그날의 은총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모든 은총을 되갚는 날까지 난 최선을 다해 봉사의 기회를 잡을 것이다. 받는 은총 뒤에는 반드시 베푸는 마음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은 채… 글 _ 이인혜 데레사(배우·경성대 AI미디어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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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8-07 오전 10:12:03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