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News

  • 전례성사
  • 가톨릭성미술
  • 가톨릭성인
  • 성당/성지
  • 일반갤러리
  • gallery1898

알림

0

  • 가톨릭뉴스
  • 전체 2건

[말씀묵상] 연중 제19주일 2024-08-07

요한복음 6장이 전하는 ‘생명의 빵’에 대한 예수님의 담화는 지난 주일에 이어서 이번 주일에도 소개됩니다. 지난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을 체험하였지만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징을 요구하면서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기 위해 힘쓰는 군중을 상대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조상들이 만나를 받아먹은 사건은 알고 있었지만, 하느님께서 만나를 주셨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요한 6,31-33 참조) 이번 주일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다인들이 등장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빵”으로 소개하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는데(요한 6,41), 예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유다인들의 불만은 곧 하느님을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 곧 하느님으로부터 권한을 받아 행동하고 말하는 ‘파견받은 자’에 대해 불평하였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이 불만을 늘어놓는 모습에서 우리는 구약성경 속 사건들, 특별히 마라에서 쓴 물을 마실 수 없어서 불평하였고(탈출 15,24),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만나를 배불리 먹었던 때를 그리워하며 현재 처한 상황에 불만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탈출 16,2-3)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다인들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을 가르치시는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들이 의심을 버리고 믿음으로써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요한 6,47 참조)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라는 표현 양식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 말씀은 앞서 6장 35절에서 언급되었는데, 여기에서 다시 반복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는 ∽이다”(그리스어: ‘에고 에이미’)는 요한복음서 저자가 예수님의 신원을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 양식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빵’ 외에도 ‘세상의 빛’(요한 8,12; 9,5), ‘문’(요한 10,7), ‘착한 목자’(요한 10,11.14), ‘부활과 생명’(요한 11,25), ‘길’(요한 14,6), ‘참 포도나무’(요한 15,1)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 저자는 “나는 ∽이다”라는 표현 양식으로 예수님의 본질 자체를 규명하기보다 예수님과 인간 사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생명은 빵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지며, 인간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믿음’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유다인들의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아주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요한 6,48)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와는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나’와 ‘생명의 빵’을 대조시킴으로써 ‘참된 빵’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환기하고, 더불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을 먹을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이 빵을 먹을 때 영원히 살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주실 빵은 예수님의 살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주는 나의 살”(요한 6,51)이라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맞이할 죽음을 암시합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누군가의 살을 먹는다”라는 양식이 적대적 행위를 표현하려고 은유적으로 사용되었다면(시편 27,2; 즈카 11,9 참조), 요한복음에서는 부정적 의미를 지닌 표현 양식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의 목숨을 내주신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 지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이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빵을 주시는 분, 곧 생명의 주관자가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은 제1독서에서 확인됩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 왕국 시기에 활동한 예언자로서(BC 875-853) 아합 임금에 맞서 이교신 숭배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1열왕 17-19장, 2열왕 1장 참조) 그는 카르멜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을 벌이고 승리의 결과로 그들을 모두 죽였습니다.(1열왕 18,20-40 참조). 아합 임금의 아내 이제벨이 이 사실을 듣고 크게 격노하였고, 이에 엘리야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제벨의 칼을 피해 시나이 광야(유다의 브에르세바)로 피합니다. 죽음의 위험에 처한 엘리야는 너무나 두렵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하느님께 간청합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1열왕 19,4) 하느님께서는 엘리야의 목숨을 거두시는 대신에 천사를 보내어 빵과 물로 그에게 힘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으로 소개하면서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복적으로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계시의 반복은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오해 혹은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주시며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전달되는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이 보여준 불평과 불만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반면교사입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예수님과 친교를 맺을 수 있으며, 이 친교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글 _ 정진만 안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가톨릭신문 2024-08-07 오전 10:12:03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