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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인생의 열대야를 지니며 2024-07-26

영화 '남매의 여름밤' 포스터

 


후텁한 계절입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더욱 휘청이게 하는 나날이지요. 이번 호에선 어느 가족의 여름나기를 그린 영화를 소개하려 합니다. 철거 직전의 동네를 떠나는 위태로운 식구들이 있습니다. 이혼한 가장이 짝퉁 신발을 팔아서 어린 남매를 키우는 녹록지 않은 처지지요. 남매의 고모는 남편과의 불화로 가출을 했습니다. 숨 막히는 여름날 그들이 찾아간 곳은 오래 왕래가 없었던 할아버지의 집입니다. 

윤단비 감독의 독립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할아버지의 낡은 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는 ‘옥주’와 ‘동주’ 남매의 눈을 통해 이 시대 서민 가족의 일상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서로의 빈 곳을 최선을 다해 채워가는 이들이 모인 곳이 우리네 가정이고, 사랑하고 실망하고 다투고 화해하는 하루하루가 가족이란 이름의 둥지를 가꿔가는 여정임을 일깨워 줍니다. 2020년 개봉 당시 국내외 영화제에서 ‘빛나는 작품’이란 극찬을 받았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어린 남매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저는 러닝타임 100분 내내 유독 할아버지에게 눈이 갔습니다. 그는 대사가 거의 없는 인물입니다. 같이 살게 해달라며 고개를 숙인 아들에게 지체없이 답해준 “응, 그렇게 해”와, 떠나간 엄마 때문에 다투다 서럽게 우는 손주들의 등을 토닥이며 들릴 듯 말 듯 건넨 “괜찮아”가 전부이지요. 하지만 조용히 웃기만 하는 노인에게서 ‘진짜 어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안부 한마디 없다가 어려울 때만 기대오는 자식들을 이유를 묻지 않고 품어주는 너른 사랑, 울음이 터질 때 조용히 다가와 잡아주는 따뜻한 손길…. 그런 할아버지가 어느날 밤 흘러간 노래에 심취합니다. “보고 싶어 가고 싶어서 슬퍼지는 내 마음이여.” 1970년대 히트송 ‘미련’을 홀로 듣는 할아버지를 몰래 보면서 주인공 옥주는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아온 ‘외로운 어르신’을 발견하지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식구들은 당신의 너무 큰 빈자리를 실감하며 오열합니다.

매일매일 허덕이는 인생길에서 가족은 유일한 버팀목입니다. 죽을힘을 다해 말없이 그 보금자리를 지켜주고 이젠 황혼녘에 쓸쓸히 서 계신 우리의 어르신들에게 주님의 은총을 간청합니다. 그분들이 계시기에 우리가 열대야 같은 인생의 숱한 밤들을 헤쳐갈 수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가슴 깊이 안도하며 감사드립니다. 


글 _ 변승우 (명서 베드로, 전 가톨릭평화방송 TV국 국장)

 

[가톨릭평화신문 2024-07-26 오전 9:12:11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