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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이 있는 휴가 보내며 새로운 내일 위해 재충전을 2024-07-24
잘 쉰다는 것은 자신의 현 존재에 머물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머릿속이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불안한 감정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다. OSV

“자꾸 자꾸 재촉하지 말아요. 나도 진짜 바쁘단 말이에요. 학교 끝나면 방과 후에 영어학원·수학학원, 그냥 뭐 노는 줄 아나요? 나도 쉼이 필요해, 나도 쉼이 필요해.”

제주소년 오연준이 부른 노래다. 아이는 쉼의 시간에 넓은 들판에서 마구 뛰놀고, 푸른 파도 속에 마음껏 헤엄치며 놀고 싶단다. 공부하기 싫고 단지 놀고 싶다며 칭얼대는 아이가 아니다. 순수하고 청량한 소년의 목소리에서 아이들의 고단한 현실과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어른으로서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쉼의 시간에 스마트폰이나 게임이 아닌, 푸른 자연과 함께 머물고 싶다고 노래한다. 마치 어른들에게 진짜 ‘쉼’이 무엇이지 넌지시 알려주는 것 같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모두 쉼이 필요하다. “쉬면서 ‘나’라는 인격이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쉼’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우리는 디지털의 지속적 연결로 인해 쉼과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번 아웃의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간다. 편리하고 빠른 기술의 도움으로 빨라도 너무 빠른 시간을 살면서 ‘현재’라는 시간에 온전히 머물지 못한다. 현재라는 시간이 희미해지면서 나라는 ‘존재’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디지털 가상공간과 빠른 속도의 시간에 묻혀 완전히 다른 개념의 시공간에서 무언가에 쫓기듯이, 취하듯이 그렇게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는 동안 우리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여 ‘불안증’이나 ‘우울증’이 흔한 병이 되고 있다.

H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피곤이 몰려온다고 한다. 문제는 편안하게 침대에 누웠지만 금방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도권 거주자인지라 서울로 출근해야 하니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압박에 마음은 불안하다.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는 계속 구시렁대는 소리가 들린다. 불안한 감정의 아우성이다. 몸은 쉬고 있지만 뇌는 걱정·후회·미움·서운함·화 등의 감정조각들을 처리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잠이 오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을 본다. 불안한 생각들로부터 회피할 수 있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수면리듬을 조절해주는 멜라토닌 생성을 방해하면서 각성상태가 이어져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 이른 아침 일어나 직장에 나가지만 집중력은 떨어지고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갈수록 신체에도 이상신호가 온다. 두통과 소화불량·이명증으로 건강마저 걱정되고 불안하고 우울하다. 이때 쾌감을 주는 도파민이 고프다. 빠른 자극을 주는 숏폼이나 게임 같은 것을 보면서 휴식을 취한다. 하지만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피로감은 증폭된다. 쉬어도 쉬는 것이 아닌 상태로 피로가 쌓여가는 이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H의 생활패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악순환이다. 휴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휴식을 취하면 뇌도 쉬어야 하는데, 뇌는 여전히 땀을 흘리며 일한다. 휴가 기간 집에서 잠만 자고 스마트폰이나 만지작거리면서 아무것도 안 했는데 피로감은 여전하다고 한다. 몸은 쉬었지만 뇌는 과로상태다. 전두엽에는 쉴 때 활성화하는 쉬는 뇌(resting state brain)가 있다. 잘 쉬어주면 집중력과 기억력 그리고 감정조절을 담당하는 뇌의 사령관인 전두엽을 깨워준다.

잘 쉰다는 것은 자신의 현 존재에 머물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머릿속이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불안한 감정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상태다. ‘멍’ 때리는 순간일 수도 있고, 자연 속에서 산책하는 순간이나 기도와 묵상의 시간일 수도 있다.

잘 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느리고 심심하고 밋밋한 자극으로 고요함을 누려야 한다. 어쩌면 외롭고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디지털 기기로 장시간 도피하면 전두엽의 활성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이때 쉬는 것이 아니라 일터로 나가 일할 때처럼 긴장과 흥분상태로 돌아간다. 도파민의 과다분비로 인해 만성피로와 우울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느리고 밋밋한 자극으로 고요한 상태에서 뇌의 피로가 풀린다. 나 홀로 자연과 함께 머물거나 묵상과 기도할 때 쉼의 뇌가 활성화된다. 작고 느린 자극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고요해진다. 심심하고 외로워도 평화롭다. ‘쉼’이 있는 여름휴가가 그리운 세상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휴가하면 영어로 ‘Vacation’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라틴어 ‘Vacationem’(vacatio)은 비우다·자유·여가의 뜻을 지니고 있지요. ‘비움’이란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비워야 자유로워지고 또 새롭게 채워집니다. 휴가는 나를 속박하고 힘들게 하는 시간을 내려놓고 새로운 내일을 위해 충전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수녀들은 휴가를 ‘재충전’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휴가의 가장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일로부터 오는 긴장과 불안과 스트레스를 비워내는 ‘쉼’이 있는 휴가였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나와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잠깐이라도 디지털 디톡스(Digital detox)가 필요하겠지요. 특히 중독성이 강한 짧은 숏폼이나 게임은 뇌를 망가뜨리고 노화를 촉진시킨다는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강한 자극을 주는 이런 영상은 전두엽의 쉬는 뇌의 활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면서 피로가 쌓입니다. ‘쉼’이 있는 휴가를 보내면서 기억하고 집중하는 에너지를 모아보면 어떨까요? ‘현재’의 시간에 집중하면서 고요히 머무는 느리고 지루한 ‘쉼’의 시간을 보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7-24 오전 9:52:14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