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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그때 그 테헤란의 교우님들(송영은 가타리나,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선임연구원) 2024-07-24


옛 전우들은 언제 만나도 끈끈하다고 하지 않던가. 내게는 2011년 9월 테헤란에서 처음 만나 가을과 겨울, 함께 미사를 드렸던 교우님들이 그렇다.

일본 도쿄에서 이슬람 고전사상을 공부하던 나에게 테헤란은 꼭 한번 가고 싶은 곳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려운 귀하고 방대한 자료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슬람 고전사상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대학자들이 연구하고, 가르치고, 집필했던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섯 달 남짓 프랑스 학자 앙리 코르방의 이름을 딴 거리를 걷고, 일본 학자 이즈쓰 도시히코가 가르쳤던 곳에서 페르시아어로 된 그의 저작들을 발견하며, 고서점에서 눈이 빠지게 책들을 훑어보는 것은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나에게는 적지 않은 자극이 되었다.

하지만 현대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나에게 일상생활은 매 순간 고난의 연속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고전어는 말 그대로 너무 ‘고전적’이어서 상점에서 빵을 달라고 할 때조차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때 슈퍼 주인과 나의 상황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마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올 법한 1900년 언저리 사람이 돌연 100년 후 서울 한복판 카페에 들어와 “여기 가배 한 사발 주시오”하는 꼴이었을 터. 지금도 피식피식 웃음이 난다.

테헤란에 온 지 한 달 반 정도 지났을까, 그럭저럭 간단한 용어와 길거리 풍경에 눈과 귀가 트일 즈음, 천운처럼 이란을 방문하신 대주교님을 뵙게 되어 테헤란의 교황대사관에서 매주 한국어 미사가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일본에 돌아갈 때까지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미사를 드리고, 생활의 많은 부분을 함께할 수 있었다.

대사관의 신부님께서 영어로 집전하시는 미사에 신자들이 찰떡같이 한국어로 응답하며 참여하는 미사의 맛이란! 공동체가 모여서 이태석 신부님의 ‘울지마 톤즈’를 보며 훌쩍거렸던 기억, 신부님의 영명 축일이었던가, 신자들이 함께 모여 불렀던 ‘퍼햅스 러브(Perhaps Love)’의 우렁찬 소리, 내가 이사한 자취방까지 오셔서 같이 기도해주신 성모회 자매님들의 따뜻함, 금같이 귀한 한국산 매운 라면을 선물 받고 먹었을 때 느꼈던 매콤함과 코끝의 시큰함까지. 앞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그때의 기쁨이 더 컸던 이유는 내가 누구이고 무엇인지는 상관없이, 오로지 신앙 하나로만 공동체 안에 받아들여지고 머무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앙 공동체에 머무르면서 또 하나 달라진 중요한 점은, 내가 미사에 가는 걸 본 이란 친구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줘”라는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 친구들이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은 종종 했었지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많은 것을 현지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만큼은 온전히 나 스스로 할 수 있기에 그런 부탁이 더 고맙기도 하고, 그들과 나 사이의 간극이 기도라는 다리로 연결되는 것 같은 뭉클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을 그때 그 테헤란의 교우님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하며,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7-24 오전 7:32:10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