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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세이] 다큐 ‘한국인 최양업’ 제작 에피소드(3) | 2024-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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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업 신부님의 다큐멘터리 배경으로 고택이 필요했다. 어느 날 이태종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감곡 가는 길에 ‘김주태 고택’의 이정표가 보였다. 신부님께 말씀드리니 “그런 곳은 본 적이 없다” 하셨다. 분명 우리는 봤는데…. 다시 가보니 찾을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꾸불꾸불한 논둑길을 여러 번 왔다 갔다 한 뒤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조선 후기의 고택은 잠겨 있었고 마을에는 인적이 드물어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포기를 하자니 아쉬움이 남았지만,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감곡은 복숭아의 고장이니 복숭아나 사가면 좋겠다 하여 아무 밭이나 들어가 주인을 불렀다. 난생 처음 보는 커다란 복숭아를 맛보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다가 고택 이야기가 나왔고 다큐 촬영을 위해 “고택에 들어가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 하니 복숭아밭 주인이 바로 고택을 관리하시는 분일 줄이야. 고택의 대문이 열리는 장면은 서학이 들어오는 과정과 접목시키고, 굳게 닫힌 방문은 조선시대 여성들이 마음대로 외출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묘사하기로 했다. 잘 관리된 고택에는 그 당시 양반들을 위해 만들어진 돌 세숫대야까지 놓여 있었다. 하인은 양반을 위해 매일 아침 물을 몇 번이나 길러 날랐을까. 조선시대 양반제도의 실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고택의 정취에 젖어 열심히 촬영하는 중 카톡의 메시지가 왔다. ‘사명’ 노래 작곡가인 이권희씨가 ‘사랑, 그 곳에’라는 새로운 곡을 보내오셨다. ‘사랑 그곳에 물과 피의 희생이, 생명 그곳에 하늘의 사랑있네.’ ‘십자가 그곳에 나를 향한 사랑이, 예수 그곳에 영원한 생명있네.’ 최양업 신부님의 여정에는 희생이 있었고 생명이 있었고 십자가가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은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사랑, 그 곳에’ 우리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 있으리라. 이 노랫말을 다큐에 사용하기 위해 바로 작곡가에게 저작권 허락을 받았다. 긴 시간 헤매며 고택을 찾고 음악까지 얻게 되는 귀중한 오후를 잊지 못하는 것은 힘들었기 때문이고 어떻게든지 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십자가 없는 사랑이 과연 얼마나 오래 남을 수 있을까? 최양업 신부님의 ‘사랑의 길’에도 분명 십자가는 아주 많았을 것이다. 지금 나의 길은 어떤가? 십자가만 보인다면 당연히 피하고 싶다. 그러나 그 속에 사랑을 잉태하고 있다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글 _ 박정미 체칠리아(다큐멘터리 ‘한국인 최양업’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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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7-23 오전 9:52:10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