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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하나] ‘예’와 ‘아니요’ | 2024-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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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H. D. 소로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하버드대를 나온 수재로 약 2년간을 도시를 떠나 홀로 숲속 생활을 하면서 흔치 않은 느낌을 하나씩 모아놓은 ‘월든’이라는 책을 썼다. 법정 스님이 열반에 들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은 책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잡다한 세상을 벗어나 제 홀로 고요한 침묵과 묵상의 삶을 살면서 느낀 점들을 풀어놓은 것이어서 그리스도인들도 한 번쯤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소로는 “말이란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하여 있는 것 같다”(6. ‘방문객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어쩌면 말이란 사람과의 소통 정도면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소로는 다른 책에서 이런 말도 했다.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시민의 불복종’) 멋진 표현이다. 우리는 참으로 말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말 때문에 실수하고 상처받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가. 성경 속 예수님도 사람들의 말 때문에 속깨나 끓이셨다. 뻑 하면 오해하고, 본질이 아닌 것을 가지고 시험하는 통에 말문이 막힐 정도였으니. 그래서 언젠가부턴 아예 비유로만 말씀하셨다. 결국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마태 5,37)라고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왜 자꾸 거짓을 말할까. 뭔가 켕기는 게 있거나 꿍꿍이가 있어서일 것이다. 때론 사실이 아닌 변명만 늘어놓아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때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참에 확실히 정리하셨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 사실만을 말하고, 구차한 변명을 하지 말라신다. 그러면 어떤 이들은 말할 것이다. 할 말 못 할 말 다 하면서 사는 게 우리네 삶인데, 어떻게 할 말만 하면서 사느냐고. 요컨대 하나 마나 한 얘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 서로 소통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너무 말이 없어도 답답하긴 하다. 예수님의 의도는 아무 의미 없는 말, 제 자랑하듯 하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괜히 안 해도 될 말을 해서 죄를 짓느니, 당장엔 답답할지라도 침묵이 더 웅변적일 때가 있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앞에 나선 사람은 스스로에게 ‘무다언(毋多言) 무폭노(毋暴怒)’ 해야 한다고 했다. ‘말을 많이 하거나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며, 화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2. 율기) 예수님 생각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육적인 언어보다 영적인 언어가 더 잘 어울리는 것은 왜일까.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은 좋은 일이며 배워야 할 습관이다. 물론 일상에서 ‘예’와 ‘아니요’만을 말하기에는 삶이 복잡하고 녹록지 않은 점도 있다. 다만 굳이 거짓을 말하지 않으려는 뜻에서 그리고 자신의 주장만을 관철하려는 부당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면 쉽고 간명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 글 _ 유희석 안드레아 신부(수원교구 구성본당 주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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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7-23 오전 9:52:10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