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함명춘 (시인, 사도 요한)
1966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월간 「꿈」 편집위원이며,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활엽수림」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무명시인」 「지하철엔 해녀가 산다」 등이 있다. 2021년 제31회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삽화 _ 조경연 (프란치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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