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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농업 일지(1) 2024-07-19


나는 농사꾼이다. 쉰 살이던 삼 년 전까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제일 막내둥이 농사꾼이었다. 암이 발병하고, 수술과 방사선 등 항암치료 4년 동안에 농장과 집을 팔고 20년 가까이 살던 동네를 떠났다. 그리고 2년여 동안 시내 아파트에서 요양과 치료를 겸하며 살았다. 하지만 몸이 편안했던 시내 아파트는 맘이 불편했다. 자동차를 비롯한 각종 소음과 미세먼지와 매연 등으로 여름에는 창을 열고 지낼 수가 없었다. 마침 전세 기간도 다되고 아파트 값이 감당할 수 없이 올라서 도저히 시내에서 살 수가 없었다. 아니 살고 싶지 않았다. 전에 살던 천안시 광덕면 지역을 포함하여 근교 농촌 지역의 빈집을 찾아다니다가 알맞은 집을 발견하고 다시 전원생활을 시작한 지 만 1년이 되었다. 1999년부터 시작해서 23년 차 농사꾼인 셈이다.

귀농 첫해에 고추 농사, 단호박 농사 별 볼 일 없었고, 표고버섯 농사 5년 만에 망하고, 닭 사료용 귀뚜라미 농사 또 망하고, 농사 10년 되던 해에 빚만 2억원 가까이 남았다. 

농협의 대출금 이자는 이자를 낳고, 이자의 이자는 또 이자를 낳았다. 결국 부채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한 삼 년 외도를 했다. 농업의 길이 아닌 다른 생업을 선택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농민은 가까운 도시에서 막노동을 하거나 다른 큰 농장에서 일당 일을 하면서 생활비는 벌고 있는 실정이다. 젊은 부부들은 아내가 농사를 전담하고 남편은 직장을 다니면서 맞벌이를 한다. 대부분의 직장도 계약직과 비정규직이다. 직장에 나가지 않는 휴일이나 한여름 새벽에 농사일을 하고 출근을 한다. 중년의 농사꾼들은 자식들이 대학에 진학하면 조금 있는 땅마저 팔아서 학비를 대야 한다. 매번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한 반값 등록금이라도 지켜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네 형님들과 가끔 마을회관에서 막걸리 한 잔이라도 하면 하소연이 막걸리 사발에 하나 가득하고 넘쳐난다.

그러면 왜?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농사를 짓고 농촌에 살고 농민으로 사느냐고 물을 것이다. 나의 대답은 “그렇게 사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새소리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어쩌면 이들 소리로 잠에서 깨어난다. 바로 자연의 소리다. 눈앞에 바라보이는 텃밭에는 각종 야채들이 있다. 조금만 고개를 들면 동네 한가운데로 흐르는 개울과 건너편 산등성이까지 모두 자연이다. 밥을 먹고 들로 나가면 흙과 물과 풀과 농작물들이 기다린다. 한참 일하고 나면 아내가 내온 간식에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고 그늘에 앉으면 노랫소리가 절로 나온다. 여기까지 들으면 참으로 낭만적인 농촌 풍경이 그려진다. 오월까지는 좀 낭만적이다. 장마가 시작되는 유월부터는 풀이 난다. 그냥 나는 게 아니고 엄청나게 솟아난다. 과히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란 말이 딱 맞는다. 첫해 농사지으면서 나도 제초제를 사용하였다. 논밭의 잡초가 도저히 감당이 안 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첫해 쓰고 남은 농약병을 창고에 걸어두었다. 다시는 농약을 쓰지 않고 몸으로 머리로 해결할 방법을 찾으며 실천하겠다는 의지에서였다. 여전히 그 농약은 아직도 쓰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풀을 이긴 것은 아니다. 여전히 텃밭과 마당은 풀이 가득했다. 사회복지사로 이주민 관련 기관에서 근무하는 아내가 아침저녁은 물론 주말마다 고생이 많다. 남편 덕에 주말마다 허리가 아프다니 할 말이 없을 따름이다.

그러던 차에 자연농업을 알게 되었고 교육을 통해 자연농업을 실천하며 오늘까지 오게 되었다. 우리 정부는 최근에 스마트팜 등의 대규모 과학적 농업에 대하여 열심히 홍보한다. 값이 싸다고 탐스럽게 생겼다고 선택한 농산물은 대부분 과학적 농업의 결과물들이다. 요즘은 맛이 좀 떨어지고 못생겼어도 건강에 좋은 친환경 농산물을 찾는 경향이 늘고 있다. 도시에는 가톨릭 우리농을 비롯한 한살림, 생협 매장들이 많이 생겼다. 시내의 대형 마트에도 친환경 매장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을 산에 가보면 참나무에 도토리가 열린다. 그 나무에 어느 농사꾼이 거름을 주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누가 가지 치고 물을 주고 가꾸는 것을 보았는가?

그렇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라고 말씀하셨다. 산속의 도토리처럼 돌보고 가꾸지 않아도 되는 농업. 사람의 손은 최소한으로 제한하는 농업. 소, 돼지, 닭 등의 가축과 모든 농작물 자신이 알아서 클 수 있도록 만드는 농업. 이것이 바로 자연농업이다. 어떤 사람들은 게으름 농법이라고도 하고 건달 농법이라고도 알려진 자연 농업에 대하여 소개할까 한다.


글 _ 김정수 (베네딕토, 대전교구 가톨릭농민회 부회장)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보다 농사를 택하여 지금까지 농촌에서 살고 있다. 2018년 요막관암 3.5기 진단받고, 수술 후 항암 4년차이다.
삽화 _ 김 사무엘
 

[가톨릭평화신문 2024-07-19 오전 9:12:07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