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도원에 부탁이 하나 들어왔다. 수녀님들께서 남양 성모성지에 가셔야 하는데 수녀원에 승합차가 없어서 차량 봉사를 부탁한 것이다. 원장님께서는 흔쾌히 우리 수도원의 승합차를 빌려주실 뿐만 아니라 수녀님들을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도록 기사도 한 명 붙여주시겠다고 하셨다. 원장님은 어떤 사람을 보낼까 생각하시다가 운전을 살살 잘하는 나에게 부탁하셨다.
나는 어릴 때 버스에 타면 운전 기사님 옆에 불룩 튀어나온 엔진 박스에 걸터앉아 기사님의 운전을 흉내 내곤 했다.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운전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자전거든 오토바이든 차든 운전을 살살 잘한다.
원장님의 특명을 받은 나는 수녀님들을 잘 모시고 다녀오겠다며 즐겁고 편한 마음으로 수녀원으로 갔다. 수녀님들께서는 반갑게 맞아주시며 고마워하시고 깔깔깔 웃으시며 차에 탑승하셨다.
나는 수녀님들께 “우리 원장님께서 수녀님들 잘 모시고 다녀오라며 운전을 살살 잘하는 나를 보내셨어요”라며 은근히 자랑하였다. 수녀님들은 “신부님이 운전을 제일 잘하시나봐요. 신부님만 믿어요. 고마워요” 하고 나를 추켜세워주셨다.
한껏 의기양양해진 나는 시동을 걸고 수녀원의 좁은 골목길을 스무스하게 빠져나온 후 큰 길로 접어들었다. 복잡한 시내여서 그런지 차량이 꽤 많았지만, 내가 누구냐? 나는야 베테랑 모범 운전수.
그러나 그 자만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사거리 신호등에서 직진하려고 하는데 신호등에 갑자기 노란불이 켜졌다. 거기서 서자니 급정거해서 수녀님들이 놀랄 것 같아 그냥 통과하는데 아뿔싸, 신호등이 빨간 도끼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저 앞에서 순경 아저씨가 차를 세웠다.
“신호 위반하셨습니다. 면허증 주시죠.”
에구, 큰일 났다! 수녀님들 보기에도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면허증을 내주는데 순경 아저씨가 차 안을 들여다보시더니 하시는 말씀.
“이보슈, 수녀님들 저렇게 많이 모시고 다니는 양반이 운전 제대로 하셔야지. 이번에는 경고장 발부로 처리해줄 테니 수녀님들 똑바로 잘 모시고 다니슈.”
휴, 살았다. 수녀님들께 창피하긴 하지만 딱지는 안 끊었으니, 원장님 볼 낯은 있다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뒤에 계신 수녀님들이 하시는 말씀.
“신부님, 괜찮으세요? 아까 경찰 아저씨가 성당 다니시나 봐요. 수녀님들 탔다고 봐주시는 걸 보니. 신부님, 경찰 아저씨 말대로 우리 잘 모시고 다니세요. 깔깔깔!”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1991년 성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 1999년 서울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선교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사제서품 후 유학, 2004년 뉴욕대학교 홍보전문가 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성 바오로 수도회 홍보팀 팀장, 성 바오로 수도회 관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그리스도교 신앙유산 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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