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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작업으로 ‘부활’한 라파엘로의 ‘의자에 앉아 있는 성모’ 모사화 | 2024-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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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전 대학원 졸업을 위해 열심히 논문을 다듬고 있던 내게 벨기에에 다녀오신 P신부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브뤼셀의 벼룩시장에서 ‘성모자’ 그림을 헐값으로 샀는데, 나름 괜찮아서 당장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술품 복원을 전공하고 있던 필자로서는 호기심과 함께, 신부님께 ‘벼룩시장에서 보물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일깨워주려는 마음으로 흔쾌히 응했다. 신부님 손에 들려 온 것은 간신히 윤곽만 알 수 있을 정도의 성모자와 요한 세례자가 그려진 작품이었다. 무분별한 덧칠과 두꺼운 바니스(그림 보존을 위해 작품 위에 바르는 용액)가 덕지덕지 발려 있고, 더러워서 손도 대기 싫을 정도였다. 성모님의 섬섬옥수는 더러운 목장갑을 낀 것처럼 두툼했고, 요한 세례자는 자애로운 모습이 아니라 호러물에 나오는 인물처럼 괴기스러웠다. 동행한 J신부님은 ‘사진에다 바니스와 물감을 발라서 저 지경’이라는 나름의 분석을 피력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유명한 라파엘로의 작품과 똑같아 보였다. 유럽 등지에서는 명화의 사진 위에 마치 실제 작품처럼 바니스 등을 칠해서 판매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그렇게 판단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확대경으로 자세히 조사한 결과, 사진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유화 작품은 분명한데 온갖 것에 오염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신부님께 재료비만 받는다는 조건으로 꼬박 3개월에 걸쳐 복원작업을 한 결과, 이 그림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훌륭한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19세기 무렵 그려진 라파엘로의 ‘의자에 앉아 있는 성모’의 모사화였다. 복원된 작품을 보고 P신부님을 비롯해 주위 분들이 감탄하며 ‘부활하였다’는 표현까지 썼지만, 실은 원작의 질적인 우수함이 복원 효과를 돋보이게 한 것이다. 기도할 방에 성스런 작품을 한 점 걸고 싶어 했던 유학생 신부님의 간절한 소망에 예수님께서 아주 특별한 선물을 하신 게 아닐까? 결과적으로 ‘벼룩시장에선 보물을 찾을 수 없다’는 내 지론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 작품처럼 매우 안 좋았던 상태에서 새롭게 변모한 모습을 두고 ‘부활’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특히 '슬럼프에 빠졌던 아무개 축구선수가 해트트릭하면서 부활했다' 등과 같이 스포츠 기사에 많이 등장하는데, 부활의 원래 의미는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인간사에서 사람이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것처럼 극적인 일이 있을까? 우리가 교회 밖에서 접하게 되는 부활이란 표현은 이처럼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관점에서 극적인 변화를 비유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 단순히 한 인간이 죽었다 되살아난 기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예수님은 스스로 죽으시고 하느님의 아들로 거듭나심으로써 우리에게 신앙에 대한 확신과 사후의 구원을 약속하신 것이다. 내가 복원한 작품은 현재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P신부님의 방에 걸려 있다. 그 방을 방문하는 분들은 작품을 감상하는 대신 얽힌 사연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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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7-17 오전 10:52:14 일 발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