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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개발’이 아닌 나 스스로 능동적으로 ‘계발’해야 2024-07-17
우리 마음은 원래 좋은 땅이다. 충분히 사랑의 자원과 에너지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개발’이 아닌 ‘계발’을 해야 한다. OSV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싹 다.” 한때 유명 예능인이 부른 히트곡 ‘사랑의 재개발’이다. 척박하고 칙칙한 땅처럼 나비 하나 날아들지 않는 사막 같은 황량한 내 가슴을 재개발해달라고 한다. 내 마음 알고 보면 금싸라기 같은 비싼 땅이니 그냥 두지 말고 무조건 싹 다 갈아엎으란다.

사랑과 재개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조합이 트로트라는 경쾌한 리듬 탓인지 귀에 쏙 들어오긴 한다. 노래는 나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오르도록 머리의 생각부터 발끝의 행동까지 모두 다 변하게 해달라고 호소한다. 마치 완전한 회심을 갈망하듯 말이다. 그런데 화자는 누구에게 이렇게 간절하게 싹 다 갈아엎어 달라는 걸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사랑을 누군가 ‘개발’해줄 수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사랑은 개발(development)이 아닌 계발(improvement)하는 것이다. 개발(開發)은 가진 에너지나 자원이 없어도 무조건 ‘싹 다 갈아엎고’ 앞으로 밀고 나가면서 새롭게 개선해 나간다. 그렇기에 다소 폭력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계발(啓發)은 한 됫박 마중물만 있으면 빈 펌프질이라도 하다 보면 잠자던 능력이 깨어나 더 나은 상황으로 전환된다. 계발은 있는 자원을 완전히 엎어버리기보다 있는 존재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면서 성장한다.

무엇보다 사랑은 수동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능동적인 자기 의지의 행위’다. 내 가슴을 사랑의 옥토로 만드는 것은 누구도 아닌 나다. 내 마음에 전철을 내고 사랑하는 ‘그대’가 내릴 수 있게 하려면 내 스스로 소통의 역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님의 이정표를 세워주고 쿵 찍으면 딱 나오는 박자를 넣는 것도 내가 해야 한다.

우리 마음은 원래 좋은 땅이다. 충분히 사랑의 자원과 에너지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개발’이 아닌 ‘계발’을 해야 한다. 나비가 날아들지 않고 꽃이 피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 사랑의 씨앗을 품지 못해서일 것이다. 성경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마르 4,1-20)처럼 우리 모두의 마음에 씨 뿌리는 사람이 이미 사랑을 심어 놓았다.

그런데 여기에도 네 가지 종류의 흙이 있다. 늘 이어폰을 끼고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마음의 문을 꼭 걸어 잠근 사람. 수많은 정보의 발자국으로 마음이 밟혀 점점 완고하고 단단해진다. 길바닥의 사람이다. 둘째 사람은 ‘사랑’하고 싶고 사랑에 빠지고 싶은 갈망이 크다. 그만큼 민감하고 반응도 빠르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참고 버티는 힘이 없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얕은 흙의 돌밭 사람이다.

셋째 사람은 ‘사랑’을 소유하려고 한다.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데이트 폭력이나 살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종종 불안하고 걱정과 염려가 많아 숨이 막혀 질식할 것도 같다. 가시덤불 사람이다. 마지막 사람은 능동적인 의지로 있는 그대로의 존재 자체에 머물려 한다. 떨어져도 멀어져도 헤어져도 ‘소유’하지 않으니 잃거나 잊을 두려움도 배신감도 없다. 완전한 사랑, 좋은 땅의 사람이다.

대중가요의 가사는 대부분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다. 가사는 그 시대의 사고방식이나 정서와 가치를 드러낸다. 우리 가슴에 뿌려진 사랑의 씨앗이 어떻게 개발 혹은 계발되고 있는지 대중가요 가사를 종종 곱씹어본다.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한동안 청춘남녀들이 열광했던 노래 ‘썸’의 반복 어구다. 후크송처럼 훅하고 들어오는 내 거, 네 거라는 말은 소유적 표현이다.

언제부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거’, ‘네 거’라는 소유의 언어로 사랑 고백을 한다. 언어는 마음을 열어 보이기도 하고 행동양식에도 영향을 준다. 만약 사랑이 소유라면 쉽게 소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하고 미움과 적대감까지 생길 것이다. 그리고 사랑의 재개발권이 사랑하는 상대에 있다면 내 마음 역시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것이 아니라서 상대에게 집착하고 의존하기 마련이다.

사랑은 나 스스로 능동적으로 ‘계발’해야 한다. 나의 자원과 에너지를 발견하고 내 마음에 떨어진 사랑의 씨앗을 잘 품어 ‘계발’하는 좋은 땅의 사람이기를 바라본다.


<영성이 묻는 안부>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려야 하고 친절하고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도 교만하지도 않는다”(1코린 13,4)는 진리를 자주 기억해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정말 그런 거 같습니다. 사랑하기에 주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적어도 주면서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면요. 받기를 바라는 순간 사랑은 ‘소유’가 되니까요.

사랑은 소유가 되면서 불안하고 걱정되고 염려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저 멀어져도 헤어져도 사라져도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그 자리’가 본래의 고향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연인에 대한 사랑, 그리고 부모자식 간의 사랑 모두 결국 내 스스로 극복하고 절제해서 이뤄내는 최고의 덕이며 승리입니다. 성당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우리의 ‘바람’이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나의 것이 아니고 온전히 주님의 것이라는 것도 기억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07-17 오전 10:32:15 일 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