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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부르심과 응답 | 2024-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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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초등부주일학교 여름 캠프는 20대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 중 하나이다. 강의가 끝나면 대부분의 친구들이 학회실이나 동아리방에 남아 수다를 떨거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며 보냈지만 나는 좀 달랐다. “인혜야, 오늘 강의 끝나고 술 한잔하러 갈까?” “미안, 나 오늘 성당 교사 회의라서 가야 해.” “그럼 내일은? 단체 미팅하는데 낄래?” “미안해, 나 내일은 레크리에이션 교육받으러 가야 해.” 특히 여름 캠프와 주님 성탄 대축일, 은총시장 등 초등부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준비를 위해 매일 성당으로 출근하기 일쑤였다. 간혹 어떤 친구는 나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진지하게 이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너 혹시 수녀님 되고 싶은 마음 있어?” 다양한 의혹 속에서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 생활의 절반을 성당에서 바쁘게 보냈다. 그땐 성당에서의 활동이 마냥 신나게 느껴졌다. 아이들과 미사를 드리는 것도 즐겁고 미사 후 교리를 가르치는 것도 뿌듯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재미나게 신앙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좋았다. 아이들이 연기자인 선생님을 반가워하고, 학부모들이 나를 믿고 캠프를 보내주거나 모금에 참여해 주실 때의 보람은 연기자 활동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더 큰 보람으로 다가왔다. 당시 나의 교사 활동은 진심으로 적극적이었다. 평교사로 시작해 부교감, 교감까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교사 활동을 했고 연기자로 가장 이름을 알린 ‘쾌걸춘향’ 드라마를 촬영하면서도 본당 대표로 주님 성탄 대축일 행사 교육을 받으러 다닐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나에게 신앙심이 대단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에게 그 시절은 빈약했던 내 신앙심이 단단하게 뿌리내리던 시기로 기억된다. 성경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말씀에 눈을 뜨고 기도하는 방법도 터득했기 때문이다. 토요일 초등부 미사가 끝나고 뒷정리를 마치면 나는 늘 맨 마지막으로 성당을 나왔다. 불 꺼진 성당 맨 앞줄에 홀로 앉아 기도하면 그 시간만큼은 솔직한 내 안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한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쭉 늘어놓다 보면 억울하고 불만투성이였던 감정들이 사라지고 감사한 한 주로 마무리되곤 했다. 불투명한 내 미래 또한 더 이상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주어진 기회마다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하느님께서 진정한 길로 인도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사를 하면서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내게 주신 여러 탈렌트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되었고 연기자와 교수라는 두 가지 직업을 가진, 남들과는 다른 길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동안 봉사라고 여겨졌던 일들이 사실은 하느님의 남다른 ‘자녀 교육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초등부 교사 활동을 통해서 나의 말랑말랑한 신앙심을 단단하게 키우시고 나약하고 위태로웠던 마음을 단련시키는 기도 방법도 스스로 터득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직업과 잘할 수 있는 직업을 직접 찾게 해주시기도 했다. 여유 있을 때 하는 봉사가 아닌, 나를 필요로 하실 때 적극적으로 응한 덕분에 지금의 내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날이다. 글 _ 이인혜 데레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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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7-17 오전 10:12:13 일 발행 ] |